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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갗 파고든 올가미서 어미개 구한 동네주민들

서울 은평구 '독박골' 주민들의 백구 구조기

 

 

지난 17일 오후 11시 30분. 자정이 다 된 늦은 시간에도 서울 은평구 녹번동 주민들은 긴장을 늦추지 못한 채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누군가는 진정제를 준비하고, 다른 사람은 절단기, 망치 등 손에 도구를 든 채였고, 또 다른 이는 휴대전화로 모든 상황을 녹화하는 중이었다.

 

이윽고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의 시민활동가가 진정제를 먹은 백구 곁으로 다가가 몸을 조이고 있던 전깃줄 올가미를 풀자, 그제야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구조된 백구는 "아이고, 다행이다. 뺐다, 뺐어.", "뚜치야, 치료 잘 받고 온나" 등 주민들의 응원을 받으며 강동구의 한 병원으로 옮겨졌다.

 

2차 시도 만에 구조에 성공한 독박골 동네 개 뚜치

 

올가미에 걸려 살갗은 물론 근육까지 다친 뚜치

 

전기줄 올가미에 씌여 큰 부상을 입은 '동네 개'를 동네 사람들이 마음을 보태 구조했다. 일명 '독박골'로 불리는 녹번동 주민들 이야기다.

 

이 동네에는 총 4마리의 백구가 주민들의 보살핌 속에서 지내고 있다. 약 5~6년 전부터 동네에 살던 엄마개 '뚜치'와 아빠개 '미미'와 3~4개월령의 새끼개, 몇 달 전 무리에 합류한 삼촌개까지 넷이다.

 

주민 허은영 씨는 "주인이 없는 개를 '들개'라고 많이 부르는데, 이 아이들은 저희와 동네에 함께 사는 '동네 개'예요. 저희가 주는 음식을 먹고 북한산에서 내려오는 멧돼지로부터 동네를 지키는 녀석들이죠"라고 설명했다.

 

독박골 동네 개 뚜치와 미미

 

그런 동네 개 '뚜치'가 몸에 전기줄 올가미가 걸려 돌아다니기 시작한 건 1~2주 전의 일이다.

 

주민들은 새끼를 낳은 지 얼마 안 돼 예민한 뚜치를 생각해 거리를 두고 지켜보는 한편, 구조 방법을 의논했다.

 

허 씨는 "많은 분들이 '동물구조협회'를 추천했는데 그곳에서 구조할 경우 무조건 입양을 보내거나 불발 시 안락사를 시키는 과정을 따라야 한다고 했어요"라며 "묶여 살지 않는 뚜치에게 그건 좋은 방법이 아닌 것 같았어요"라고 전했다.

 

그러던 중 지난 15일, 뚜치의 상처 부위에서 피가 나는 걸 본 주민들은 인근 소방서에 구조를 요청했다. 하지만 소방관들은 난색을 표하며 동물단체에 연락하라는 말을 남기고 되돌아갔다.

 

허 씨는 "그후 카라에 연락해 시민활동가분과 함께 첫 번째 포획을 시도했지만 놀란 뚜치가 도망가며 실패하고 말았어요"라고 말했다.

 

주민들은 뚜치의 상태가 점점 나빠지고 있음을 확인하고 각자 역할을 철저히 분담해 지난 17일 두 번째 포획에 나섰다.

 

동네 병원인 '독립문 동물병원'도 진정제 약과 밥을 다시 지원하며 주민들을 도왔다.

 

오후 9시 뚜치에게 진정제를 넣은 밥을 먹인 후 약기운이 퍼질 때를 두 시간 반을 기다려 포획한 후, 자정 무렵 전기줄 올가미를 제거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포획을 진행한 시민 활동가가 놀란 뚜치에게 물리기도 했지만,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닌 것으로 전해졌다.

 

  

병원으로 옮겨진 뚜치는 18일 현재 상처 부위는 소독했지만, 근육이 절단되는 등 상처가 깊어 외과 수술을 기다리고 있다.

 

주민들은 뚜치가 병원에 간 이후 남은 백구 세 마리가 밥도 잘 먹지 않은 채 불안해하고 있어 뚜치가 얼른 건강해져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어미개가 병원에 간 후 주차장에 숨어 지내는 새끼

 

허 씨는 "전기줄 올가미는 동네 사정을 잘 아는 주민분이 아닌가 조심스레 추측된다"며 "주민들과 한자리에 만나 개와 사람이 조화롭게 살 수 있는 길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송은하 기자 scallion@inb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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