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하신 할아버지는 손자들에게 옛날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셨다. 그런데 할아버지의 이야기 대부분에서는 호랑이가 등장하였다.

할아버지는 그 이야기가 오래 전에 있었던 일임을 강조하기 위해서 흔히 “이 얘기는 호랑이가 담배를 피우던 시절에 있었던 일이다”고 하셨다.

그런데 우리나라 호랑이들은 언제부터 담배를 피웠을까? 물론 할아버지도 그 시기를 정확히 제시하시지는 못하셨다. 그저 엄청 오래 전이라는 것 외에는...

조선호랑이 또는 한국호랑이가 담배를 피웠던 시점을 알기 위해서는 한반도에 언제 담배가 전래되었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러면 옛날이야기에 자주 등장하는 호랑이가 담배를 피운 시점을 알 수 있다.

담배의 원산지는 애연가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인 중앙아메리카다. 그런데 특정 지역 특정 주민들의 특산품이었던 담배가 세계에 퍼지게 됐을까? 이는 대항해시대와 깊이 관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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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항해시대 당시 중남미를 석권한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상인들은 신대륙에서 구대륙으로 감자, 토마토 같은 농식품을 전파하였는데 담배도 당시 같이 전파한 것으로 추정된다.

중미에서 유럽으로 전파된 담배는 얼마 지나지 않아 아시아로도 보급된다. 아시아로 전파된 최초의 담배는 포르투갈 상인들이 스페인 식민지였던 필리핀에 16세기에 가져온 것이 최초로 추정된다.

필리핀에 전래된 담배는 필리핀에서 일본으로 다시 전파된 것으로 보인다. 이후 일본에서 조선과 중국으로 담배가 전파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부 학자들은 임진왜란 당시 왜군에 의해 조선에 담배가 전래되었다고 하는데 확실한 근거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임란 직후 17세기 초반 광해군 집권 시절 담배는 이미 조선 전역에 널리 보급된 것으로 보인다. 선조의 뒤를 이은 광해군은 담배연기를 싫어하여 신하들에게 담배를 피우지 못하게 지시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자신의 의지로 담배를 끊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인 것 같다. 비록 군주인 광해군의 지시가 있었다고는 하여도 신하들이 바로 금연을 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다만 광해군 면전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 수준으로 자제했을 것 같다.

임란 직후 집권한 광해군 재위 시절을 감안하면 담배 전래는 임진왜란 당시라는 주장도 설득력이 박약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여러 정황을 살펴보면 우리 선조들이 즐겨 말씀하시던‘호랑이가 담배를 피우던 시절'은 조선 선조 집권 후반부터 광해군 집권 시기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