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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훔볼트 해류가 낳은 땅 이까, 파라카스

차우칠라(Chauchilla) 묘지군은 나스카 문명의 또 다른 단면입니다. 리마로 향하는 길목에 차우칠라 묘지군을 찾아가 봅니다. 나스카에서부터 16km 더 깊숙이 들어앉은 차우칠라 유적지는 무덤군으로 많은 머미(Mummy)가 출토 됩니다. 미라는 나스카뿐만 아니라 페루의 여러 지역에서도 발견됩니다.

 

특히 나스카와 마추픽추, 쿠스코 외곽에서 다량의 머미가 나오는데 이는 고대인들의 신념과 연관이 깊습니다. 머미는 내장을 제거하고 방부처리를 해야 하는 과정과 일주일에서 한 달 가량 소요되는 기일 때문에 비용이 많이 듭니다. 더불어 장식도 해야 하니 웬만한 일반 가정에서는 엄두도 못내는 사치입니다.

 

그런데도 고대인들은 자신이 죽으면 머미로 다시 태어나길 바랐고, 왕은 물론 왕족이나 부유한 귀족들은 자신이 사후 머미로 재탄생되는 과정에 많은 재산과 정성을 쏟아 부었습니다. 고대 이집트의 머미 뿐만이 아닙니다. 현대에서도 레닌, 모택동, 호치민, 김일성이 그런 희망을 품었었는지 현재 그들은 머미로 존재합니다. 그들의 의식 속에 살아있는 믿음은 무엇일까요,

 

잉카의 마지막 황제 아따왈파는 피사로에게 생포된지 8개월 만에 종교 재판에 회부되어 화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죄목은 근친혼과 일부다처제인데 잉카의 왕은 본래 누이나 사촌을 부인으로 삼는 것이 관습이었고 여러 명의 부인을 두는 것 역시 풍습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아따왈파를 가톨릭의 잣대로 보고 잉카의 문화를 부정한 것입니다.

 

아따왈파는 죽음은 두렵지 않으나 화형만은 피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이에 사제는 아따왈파에게 개종을 하게 되면 화형은 면할 수 있다고 알려줍니다. 당시 화형은 이교도에게 내리는 가장 참혹한 벌로 존재 자체를 태워 없애는 형벌이었지만, 가톨릭의 세계뿐만 아니라 잉카인들도 동일한 사고를 갖고 있었습니다. 육신은 신과 교통하는 통로이며 환생할 때에도 육신이 필요하기 때문에 육신이 없어지는 화형은 곧 절망을 의미합니다.

 

결국 아따왈파는 사형 3일 전 개종을 했고, 화형대신 목이 잘리는 사형을 당합니다. "내 삶은 후안, 나는 이 이름을 가지고 죽어가는구나" 아따왈파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입니다. 잉카와 고대의 제국들은 머미를 만드는데 적극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내세와 환생에 대한 집착 때문입니다. 차우칠라에서 만나는 초라한 머미들도 그런 이유로 수백 년, 수천 년이 지나도록 남겨진 장식품들입니다.

 

페루의 머미는 다른 지역과 달리 앉아있는 형상을 취합니다. 망자는 운명을 다하기 직전에 동쪽을 향해 앉은 자세로 죽음을 맞게 하고, 죽은 후에는 앉은 자세를 유지할 수 있도록 새끼줄이나 천으로 몸을 묶는다고 합니다. 물론 이집트보다는 단순하지만 내부의 장기를 빼내고 방부처리를 하는 일련의 과정은 마찬가지입니다.

 

이집트에서는 리덴(광목) 붕대로 전심을 감싸는 반면 페루에서는 머리 부분은 노출한 채 장식을 하고 몸은 "파라카스 직물"로 불리는 화려한 망토로 감쌉니다. 파라카스 직물은 보통 1인치에 199가지의 올을 촘촘하게 짜여진 천에 여러 상징적인 도안을 무늬로 새겨 넣은 망토로 현대의 직조 기술로도 만만치 않은 도전이기에 망자를 향한 마음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듯 보입니다.

 

허름한 발굴 터에는 그대로 노출된 머미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턱이 건들거리고 피부가 모두 벗겨져 있어 아쉬움이 남습니다. 아무리 건조한 사막이라지만 햇빛과 공기에 접촉하면 훼손되는 것을 들판에 그대로 방치하는 것이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저는 이 곳에 15년 전에 처음으로 왔었습니다.

 

오늘 찍은 사진도 그 때와 똑같으니 사진기가 좋아진 것인가요, 나스카에서는 유물이 전혀 변형되지 않나요, 어쩜 그런 기대를 하기에 15년은 너무 짧은 시간이겠죠,

 

차우칠라에서 만나는 수백, 수천 년 전의 머미

 

나스카를 떠나 이까로 향합니다. 이까는 돈황의 월아천과 명사산을 떠오르게 하는 멋진 사막이지만 그보다 더 멋지고 세련된 사막입니다. 명사산에는 낙타를 타라는 호객행위와 낙타의 오물들이 눈살 찌푸리게 만들지만 이 곳은 기계 문명이 접대합니다. 버기카라고 불리는 사막의 차량이 이까 사막을 질주합니다.

 

가파른 모래톱을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짜릿하게 내달립니다. 그러다 3단 모래톱 위에 차를 세우고는 샌드 보드를 타게 해줍니다. 어린 아이가 된 기분으로 소리치며 모래 사면을 뛰어내립니다. 그런데 잠시의 짜릿함보다 고용한 내면의 성찰이 저를 잡아당깁니다. 저 멀리 태양이 저무는 곳으로 달려가자는 저의 요청을 받아들여 모래톱을 반복적으로 넘습니다.

 

그렇게 넘고 넘으니 세상이 하나가 되는 지점에 들어와 앉습니다. 바람에 물결치는 모래가 줄줄이 꼬리를 물고 바람은 귀를 애무하며 속삭입니다. 해를 먹어버리며 노을은 천천히 대지를 쓸어내리다 어느 순간 감쪽같이 사라집니다. 저만 온전히 어둠 속으로 남겨놓고 영면의 세계는 어둠 저편 어딘가라고 합니다.

 

사막에서 영혼의 음성이 잘 들리는 것은 건너편이 그리 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사실은 빛이 없기 때문입니다. 빛의 공해에서 잠시나마 저를 소외시키는 자연의 소리가 찾아왔나 봅니다. 다시 사막을 내려가 빛의 세계에 들어가야죠, 아직 건너편으로 갈 때는 아니니까요, 이까의 밤은 그렇게 저물어갑니다.

 

이까 사막을 질주할 버기카 차량

 

이까 사막의 와카치나 오아시스

 

이까를 지나 리마로 향하는 길목의 마지막 방문지는 바예스타스(Ballestas Island) 섬입니다. 훔볼트펭귄과 바다사자가 무리지어 사는 천혜의 자연 보호구로 알려진 섬입니다. 펭귄은 남극 지방에서나 볼 수 있는 놈입니다. 동물원에도 있지만 여름에 얼음을 주지 않으면 죽어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그런 놈입니다.

 

바다사자는 극지방이 고향입니다. 두터운 지방층이 있어 얼음에 뒹굴어도 끄떡없습니다. 하지만 몸이 더워지면 지방층이 발열을 막아 견디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적도에서 그리 멀지않은 페루 앞바다에 펭귄과 바다사자가 왜 몰려와서 살고 있는 것일까요, 물론 훔볼트의 한류 때문입니다. 바닷물이 극지방과 같이 차니 몸이 더워지면 찬 물에 들어가면 해결될 것이고, 먹잇감이 많으니 떠날 이유가 없나 봅니다. 그들의 평화로움에는 불평이 보이질 않습니다.

 

40분을 쾌속 보트로 달려 섬에 접근하니 바다사자 떼가 지르는 괴성에 정신이 혼미합니다. 셀 수도 없이 많은 바다사자가 해안가에서 몸을 말리는데 수컷은 그 수가 얼마 되지 않고 대부분이 암컷이라고 합니다. 동물 세계에는 암컷 선택(Female Selection)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수컷은 자기 씨를 뿌리기 위해 암컷을 유혹해야하기 때문에 자신을 화려하게 치장합니다. 반면 암컷은 수컷끼리 경쟁을 시켜서 남은 놈의 씨를 받으면 그만입니다.

 

그러니 동물 세계나 인간 세계나 남성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저 무리 속의 수컷은 그런 경쟁에서 승리한 몇 놈일 뿐이고 대부분의 수컷은 처량하게 도피자의 섬에서 거주한다고 안내자는 설명합니다. 승리를 하면 모두를 차지할 수 있는 'The Winner Takes It all'은 인간 세계보다 동물 세계가 더욱 치열합니다. 승리자의 몫으로 주어진 저 많은 암컷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권리를 가진 놈은 몇 놈 안 되고 대부분은 하루하루를 한탄하며 해안도 제대로 없고 먹이도 많지 않은 비좁은 곳에서 굶주린 배를 움켜잡고 기거해야합니다. 바예스타스 섬은 바다사자의 불쌍한 사연이 깊은 섬입니다. 그러나 바예스타스 섬의 실질적인 주인은 바다사자도 펭귄도 아닌 하늘을 뒤덮은 바다 새입니다.

 

144개의 섬은 이들의 분노로 하얗게 쌓여 암석같이 굳어져 있는데 이를 '구아노'라고 합니다. 기록에는 1840년경부터 구아노를 비료의 주원료로 사용했다고 나와 있습니다. 실제로 잉카 시대에서도 농업의 생산력을 높이기 위해 정기적으로 해안에서 새의 분뇨를 가져다 뿌렸다는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 정황으로 볼 때 바예스타스 섬의 구아노는 잉카 시대부터 중요한 비료로 활용이 된 듯합니다.

 

 

 

훔볼트펭귄과 바다사자가 무리지어 사는 바예스타스 섬

 

독립 후 경제 기반이 취약하던 페루는 1842년부터 1870년까지 900만 톤의 구아노를 유럽과 북미 시장에 수출하였으며 국고 수입 중 80%에 해당되는 규모로 초기 페루 경제에 큰 수입원이 되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질 좋은 비료라지만 현재에도 안정적인 자립 경제를 구축하지 못했으니 구아노만으로는 페루 경제를 일으키기는 어려웠던 모양입니다.

 

그럴지라도 국고의 80%를 책임지는 저 새들을 보고 있자니 대견하기만 합니다. 잘 먹고 잘 싸는 것이 페루 정부에 기여하는 가장 복인 일입니다. 바예스타스 섬의 새들에게 페루의 국적을 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너희들은 모두 페루의 새야, 애국심을 보여줘" 찰스 다윈이 이 섬을 방문했었다면 어땠을까요, 그는 칼라파고스에서 부리새를 보고 깊은 시름에 빠집니다.

 

같은 부리새인데 부리의 모양이 13가지로 다르게 나타나는 이유를 그는 끝내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뛰어난 통찰력으로 자연의 도태를 생각해냅니다. 그의 여러 핵심적인 이론 중 하나인 자연도태는 그렇게 만들어집니다. 최근 학자들이 부리새에게 일어난 즉 13가지로 다르게 발전한 부리의 형태 변화는 먹이 섭취의 차이라고 밝혀냅니다.

 

생선을 잡아먹는 새의 부리는 뾰족하고, 낱알을 주어먹는 새는 부리가 뭉뚝했다는 것입니다. 찰스 다윈은 원인은 몰랐지만 꼭 알맞은 이론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런 것을 영감이라고 하죠, 그의 영감은 풍부한 여행 경험에서 나옵니다. 다양한 사물을 보고 사물간의 차이를 견주는 능력은 여행이 주는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부두로 돌아오던 보트는 나스카의 지상그림과 연계되었다는 촛대 앞에 멈춥니다. 길이 128m, 넓이 76m, 깊이 60cm의 지상그림은 나스카만큼 인상적이지는 않지만 산 사면에 그러져 있어 오가는 배의 등대 역할을 하기에 충분해 보입니다. 나스카의 지상그림은 지상 150m 이상의 높이에서 봐야 전체의 윤곽을 잡을 수 있습니다. 10km에 달하는 직사각형 도형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 개의 말뚝을 박아 세 개의 말뚝이 일치하는 선을 이으면 직선을 구현한다고 하지만 곡선과 꺾이는 지점을 정확히 하려면 사전에 그린 도면에 따라 높이 150m 이상의 고도에서 구조를 잡아주어야만 가능합니다. 공기로는 어렵지만 수소나 질소 주머니를 만들어 띄울 수 있었을까요, 도대체 진실이 무엇인지 아리송하기만 합니다.

 

해안가에서 점심을 먹고 물이 모래 비처럼 내린다는 파라카스 국립보호지구(Paracas National Reserve)를 찾아갑니다. 나스카나 이까, 심지어 파라카스까지 훔볼트 해류의 영향권에 해당되는 지역이니 만큼 모래가 비처럼 내린다는 표현이 무리해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동일한 문명권으로 보여 지며, 나스카는 파라카스 문명의 연장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보호지구는 땅의 역사를 보여주는 표본처럼 보입니다. 특별한 볼거리가 있지는 않지만 바다의 시원한 바람과 바닷물의 조화로움이 눈에 띕니다. 바다는 푸른 물과 검은 물이 일정 간격으로 띠처럼 형성되어 흐릅니다. 민물과 바닷물이 합수하는 지점이나 맑은 물과 탁한 물이 만나는 지점에는 밀도가 다른 두 물이 섞이지 않고 띠의 모습을 형성합니다.

 

유입되는 물줄기가 없는데 바닷물이 섞이지 않는 이유가 궁금해 안내자에게 물어봅니다. "푸른 물은 한류, 검푸른 물은 난류"라는 그의 대답에 고개가 끄덕여 집니다. 한류와 난류에 사는 플랑크톤이 다르고 그들이 띄는 색이 다르니 바닷물의 색이 다른 것입니다. 아직 바닷물이 섞이지 않고 뚜렷하게 구분되는 것을 보면 이 곳이 훔볼트 해류가 솟구쳐 오르는 지점이 아닌지요, 바닷가의 바람을 즐기려는데 안내자가 손을 잡아당깁니다.

 

그의 손에 이끌려 간 곳은 10월부터 12월까지 교미를 위해 바다사자와 물개가 몰려든다는 커시드랄 섬이 내려다보이는 전망대입니다. 인간과 달리 동물계의 교미는 놀이가 아닌 만큼 신중하고 진지합니다. 그래서 교미의 시기가 되면 특별한 지역으로 이동합니다. 다량의 미네랄과 영양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네 속된 말로 여기는 기운이 좋은 땅인 셈입니다. 자손 번식을 위해 모여드는 땅이니까요,

 

전망대에서 주변을 살펴보니 이 곳은 화산의 영향을 많이 받은 해안가입니다. 바닥에는 부석이 두텁게 깔려 있습니다. 부석은 하늘로 날아 오른 화산의 쇄설물이 찬 공기와 만나 갑자기 굳는 과정에서 많은 산소를 포함하게 됩니다. 그렇게 공중에서 만들어진 돌이다보니 지상에서 만들어진 돌보다 밀도가 낮고 가볍습니다. 그래서 물에 뜨는 것입니다.

 

파도가 밀려들 때마다 소리를 내며 해안가에 밀려왔다 쓸려가는 부석을 볼 때 미네랄이 풍부한 해안이고 이 미네랄을 섭취하는 플랑크톤 역시 풍부할 것입니다. 그런 플랑크톤을 먹고 사는 작은 물고기도, 작은 물고기를 먹고 사는 큰 물고기도 해안으로 몰려드니, 훔볼트 해류가 선사한 풍요를 만끽할 수 있는 풍요의 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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