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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나스카 평원의 지상그림

나스카 평원의 지상그림을 찾아 리마를 벗어납니다. 리마를 벗어난지 한 시간도 안되어 주변풍경은 새로운 얼굴로 화장을 고쳤습니다. 메마른 사막대지가 펼쳐지고 물을 끌어다 심어놓은 나무들이 한량없이 불쌍해 보입니다. 리마는 비가 거의 오지 않는 곳이지만 '잉카의 눈물'이라고 불리는 안개비가 도시를 감싸기로 유명합니다.

 

햇빛이 강렬한 5, 6월이 지나고 남미에 겨울이 되면 잉카의 눈물은 극에 달하는데, 마르곧의 표현에 의하면 7, 8월 달에는 습도가 -110% 정도가 되기 때문에 도심을 걷는 것은 마치 미지근한 물속을 헤집고 다니는 기분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겨울에 자살률이 높다고 하는데, 모두 해를 잃어버렸기 때문이죠.

 

한국의 겨울도 많이 변해 해가 사라졌습니다. 그 결과로 나타난 사회 병리 현상이 우울증과 자살 충동, 분노감 증대 등입니다. 삼성병원의 김도관 교수는 "미세 먼지가 발생한지 1주일을 기준으로 대기 농도가 37.82ug/m2 증가할 때마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3.2% 늘어난다는 연구 결과를 얻었다"고 미국 학술지에 발표했습니다.

 

미세 먼지가 우울증을 유발시키는 이유는 중추 신경계의 면역 체계와 신경 전달 물질을 교란시키기 때문이라는데 제 생각엔 먼지가 태양을 가리는 순간 우리의 희망도 가려졌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그만큼 태양은 인간의 몸과 정신에 중요하지 않은지요…

 

잉카의 눈물이나 리마를 벗어나 펼쳐진 사막대지나 모두 흄볼트 해류의 영향입니다. 바다를 끼고 펼쳐진 해안선에는 고급 리조트가 자리 잡고 있지만 누구도 바다로 들어가지 않습니다. 남극에서부터 적도를 향해 심해로 흐르다 페루 해안에서 상승한 한류 때문입니다. 페루는 아열대 기후이지만 물은 냉탕이니 그 누구도 물속에서 5분을 버티지 못한다고 합니다.

 

바다의 수온이 낮은 이유 때문에 리마에는 비대신 안개가 끼고 이카, 나스카를 잇는 페루 남부 해안에는 거대한 사막지대가 형성되었습니다. 반면에 페루 앞바다는 적도에서 흘러내려온 난류가 심해에서 용솟음치는 한류에 섞이는 지점이어서 어류가 아주 풍부합니다. 페루의 주 산업이 혹 관광이 아닐까 생각했었지만 첫째는 광업이고 둘째는 어업이라고 합니다. 관광업은 겨우 세번째에 이름을 올렸다고 하니 조상 덕에 사는 나라가 아니라 자연의 선물로 톡톡히 재미 보는 나라입니다.

 

두어 시간을 달려도 바뀌지 않는 풍경에 지루해질 때쯤 마르곧은 산등성이를 가리킵니다. 나무 하나, 풀 하나 없는 황무지에 말뚝을 박고 담을 쳐 둔 넓은 땅과 동화에서나 나올법한 난쟁이 집이 드문드문 세워진 들판이 눈에 들어옵니다. 페루 정부는 집과 땅이 없는 서민들을 위해 10년간 점거한 땅에 소유권을 인정하는 법을 제정했다고 합니다.

 

서민을 위한 제도였지만 실질적으로는 이미 충분히 가진 사람들의 또 다른 소일거리로 전락했다고 합니다. 들판에 듬성듬성 지어진 집들은 투기를 목적으로 세워진 집들이고 그런 집들을 관리하는데 비용을 내야 하니 땅은 서민이 아닌 가진 자들의 소유랍니다. 넓은 땅을 점유하고 있는 콘크리트 벽은을 세우려면 바닥에 콘크리트를 치고 말뚝을 하나 박아야하는데, 말뚝 하나 박는데 $3 정도 필요해서 50만평의 땅에 말뚝을 박으려면 한국 돈 약 3억 원 정도 든답니다.

 

이 벽을 10년간 유지해야 하니 웬만한 부자가 아니고서는 빈 땅이라도 주어먹기 힘들다고 하니 돈 장난일수 밖에요… 의도는 좋으나 큰 땅을 날름 집어 삼키는 사람도 역시 이미 충분히 가진 사람일 수밖에 없는게 현실인 거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에만 알박기가 있는 게 아니고 페루에도 알박기가 있네요, 인간의 탐욕은 웬만한 자기 수련으로 억제하기 힘듭니다. 정치란 게 그래서 정의로워야 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6시간을 달려 친체로로 들어서니 들판이 작물로 가득합니다. 아직 주변은 사막인데 친체로만은 오아시스 같습니다. 앞의 태평양과 뒤의 메마른 산이 만나 친체로에 물을 선물한 모양입니다. 친체로는 포도, 목과, 사탕수수를 선택 재배를 하는데, 매년 국제 시장의 가격을 보아가며 작물을 선정합니다.

 

특히 친체로의 목화 제품은 품질이 너무 좋아 1년이면 수명이 끝난다는데 잠시 혼란스러웠습니다. 품질이 나빠서 못 입는 것이 아니고? 품질이 너무 좋아서 오래 못 입는다고 하니, 오래 입는 것이 좋다는 역설은 그저 역설인 것입니다. 순면이라 빨리 닳아 1년이면 수명이 다한다는 것이 옳은 순행인 듯합니다. 친체로는 농장이 자리 잡기 좋은 땅이라서 아프리카에서 팔려온 흑인 노예가 대거 정착합니다. 내륙에서 잡혀온 흑인들은 새로운 음식에 적응해야 했는데, 풍부한 먹거리는 태평양에서 잡히는 생선뿐이었습니다.

 

흑인 노예들은 바다에서 잡은 생선을 어찌 먹을까 궁리하다가 살균을 하기 위해 강한 레몬즙에 씻었는데, 그게 세비체의 시작이라고 합니다. 페루에 도착한 첫날 유명한 세비체 집을 찾아 볶음밥과 함께 한 그릇을 비웠는데, 이런 역사의 아픔을 뒤로하고 탄생한 음식이었습니다. 새로운 음식의 탄생에 게으른 자의 행운이 숨겨져 있습니다.

 

빵의 역사를 보면 이집트의 어느 게으른 빵 장수 이야기가 나옵니다. 빵 장수는 그날 반죽한 밀가루로 빵을 만들어야 했지만 전날 과음으로 피곤했던 빵 장수는 하루 미루어두었던 빈죽으로 빵을 빚습니다. 빵 장수는 사람들이 알면 어떡하나 고민했지만 빵 맛을 본 사람들은 도리어 빵이 맛있다면 어떻게 만든 빵이냐고 되묻습니다. 발효 빵이 더 맛있다는 사실의 발견이며 이로부터 발효 빵이 시작됩니다. 중국의 마파두부, 맥주, 와인도 탄생의 비밀은 게으른 자의 행운이 숨겨져 있는지 모릅니다.

 

세비체도 "묵혀두었던 생선을 어찌 먹을까?" 고민하던 게으른 자의 선택이 살균작용이 있는 레몬이었고 절묘한 조화를 그 안에서 찾아냈을 거라는 상상에 그만 웃음이 나옵니다. 바쁘고 정확하고 올바르게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우리의 삶, 쫓는 자는 쫓기만 할 뿐이고, 재미는 뒤쳐져 한 잠 늘어지게 자고 어슬렁거리는 게으른 자가 취하니, 음식에서만일까요. 좀 천천히 게으름을 피워봐야겠습니다. 그러면 바삐 뛰느라 보지 못한 게 보이지 않을까요… 나스카에서 무언가를 찾으려면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친체로를 지나 나스카로 이동하는 중에도 황량한 대지는 여전하고 가끔 나타나는 집 담에는 "Keiko"라는 구호일색입니다. 돈을 주고 담을 빌려 광고를 한다지만 저마저도 케이코에 익숙해질 정도니 주민들은 무의식중에 익숙한 이웃으로 자리하지 않을까요. 그게 광고의 진실이죠. 케이코는 후지모리 대통령의 딸입니다.

 

차기 대선에 출마할 유력한 대통령 후보생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이건 분명한 사전 선거운동이고 여론 조작이며 세뇌에 가까운 공작입니다. 더군다나 눈에 보이는 것이 케이고 밖에 없으니 불공정한 게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페루를 버리고 도피한 후지모리가 화려하게 부활하나요. 페루의 아시아인 이민은 중국이 100년 전 노예로 팔려와 정착하며 시작했고, 뒤를 이어 일본인들이 농업 이민으로 정착하기 시작합니다. 후지모리는 그런 농업이민의 후손입니다.

 

그에 대한 평가는 극적으로 배치됩니다. 대통령 임기 중 국제회의 참석을 위해 출국했다가 국회의장에게 대통령 사임 편지를 보내고 일본으로 망명한 비겁한 독재자, 페루의 내전과 정치적 혼란을 강한 리더십으로 잠재우고 경제를 재건한 카리스마 넘치는 정치인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지만 몇 년 전, 잘 지내던 일본에서 돌아와 징역살이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의 딸이 대선주자로 나온다는데 당선이 유력하다고 말합니다.

 

부정부패와 인권유린 집권남용으로 징역살이를 하는 후지모리가 영웅으로 탄생될 시나리오가 착착 만들어지고 있나 봅니다. 정치에 무관심한 마르곧의 평가도 다르지 않습니다. "후지모리는 한 일이 많아요" 박정희 대통령도 한 일이 많습니다. 그 분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며 감정에 호소하는 기류가 팽배하지만 그건 위험한 일입니다.

 

바둑판의 돌은 세력과 실리를 선택하고 놓여집니다. 둘을 다 잡으면 좋겠지만 둘을 다 놓치는 위험이 뒤따르는 일을 기사들은 피하려 할 것입니다. 후지모리든 박정희 전 대통령이든 그 시대에 필요한 인물들이었고, 그 시대에 큰일을 했던 분들로 기억되었으면 합니다. 현재로 끌어들여 좋을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나스카 라인을 가르며 생긴 판 아메리카 고속도로를 따라 리마를 출발한지 9시간 만에 나스카에 닿습니다. 작은 마을은 신비의 지상그림을 보려는 얼마 되지 않는 사람들로 소란스럽습니다. 나스카 라인은 무엇을 함축하고 있기에 사람들의 호기심을 이리도 자극할까요, 알 수 없다는 것과 알지 못하는 것의 차이가 무엇인지 나스카에 오면 생각하게 됩니다.

 

나스카는 이해할 수 없는 부호여서 알 수가 없고 상상을 뛰어넘어 그 실체를 알지 못합니다. 나스카 지상평원은 지평선을 그으며 수평으로 나있습니다. 차가 달릴수록 지평선은 점점 다가오고 드디어 검은 캠퍼스 위로 차는 뛰어 올라갑니다. 고원대지로 오르는 길은 대지를 절개한 오르막을 달리는데, 양가의 절재 면은 적나라한 나스카 평원의 속살을 드러냅니다.

 

특히 땅의 표피는 아스팔트를 깔은 듯 조밀하고 하부와 다른 표피층이 일정한 두께로 이어집니다. 나스카 대지의 표면은 단단한 석회질과 화산재가 엉겨붙은 단단한 결정 구조를 이루고 있다는 윌리함 헨콕의 표현이 이해가 됩니다. 그러니 비가 오지 않고 바람만 드세지 않다면 대지는 몇 천 년이고 끄떡없었을 것입니다.

 

다행히도 나스카는 비도 바람도 멈춘 그런 대지입니다. 나스카의 지상그림은 시간을 넘어선 상상의 추측이며, 흄볼트 한류가 흐르는 한 변하지 않을 자연 환경까지 고려했으니 누가 만든 것인지 궁금하기만 합니다.

 

신비의 나스카 라인

 

판 아메리카 고속도로에 위치한 나스카 전망대

 

나스카의 지상그림은 1920년 아레키파 항공노선이 개통되며 조종사에 의해 처음 발견하게 됩니다. 하지만 발견되기 전에 그 전에 판 아메리카 고속도로가 건설되었기 때문에 나스카 지상그림의 일부를 훼손하며 도로는 뚫려있습니다. 나스카 시내로 들어가기 전 지금은 박물관이 된 라이헤 박사의 생가를 방문해보니 나스카 지상그림에 한 평생을 바친 한 여성의 집념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마리아 라이헤(Maria Reiche)박사는 수학선생으로 일하기 위해 페루로 오게됩니다. 그녀는 아레키파에 머물다 1939년 우연히 리마를 방문하게 되었고 그 때 미국인 학자 코스코를 만납니다. 롱 아일랜드 대학의 교수였던 코스코 박사는 고대 천문학과 관계수로의 전문가로 나스카의 지상그림이 단순한 선이 아닌 메시지가 담긴 그림이라는 것을 알아냅니다.

 

하지만 그는 라이헤 박사에게 자신이 발견한 사실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고는 그만 미국으로 돌아가 버립니다. 나스카의 영광 뒤에 한 여성의 일생이 온전히 담겨 있다고 말하는 데에는, 그녀의 사랑과 헌신 때문입니다. 그녀는 나스카와 처음 만난 그날부터 나스카와 결혼을 하고 한 평생을 나스카를 위해 헌신합니다.

 

아마도 나스카에 그림을 남긴 존재들이 그녀를 불러오지 않았을까요, 예시된 운명이 존재한다면 이런 사연을 두고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레이체 박사는 연구뿐만 아니라 나스카 지킴으로서의 역할에도 충실합니다. 1955년 산에서 흘러내려오는 물을 끌어들여 나스카 평지를 농토로 개간하려는 사업을 온 몸으로 막아냅니다.

 

또 나스카를 지키기 위해 고향에서 모금 활동도 활발히 하고 유네스코에 신청하여 인류 문화유산으로 등제시키는 일도 정부의 도움 없이 혼자 해냅니다. 그래서 오늘날의 나스카를 그녀 없이 오늘날의 나스카를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그녀는 나스카의 지킴이로써 뿐만 아닌 학자로서도 평성을 얻습니다. 라이헤 박사는 90세의 나이로 사망하기 전까지 40평생을 나스카 연구에 헌신했으며 연구 결과 나스카의 비밀을 나름 풀어냅니다.

 

그녀가 나스카 지상그림에서 얻은 결론은 무엇일까요? 과거의 어떠한 영적인 힘에 의해 그저 지킴이의 운명을 따랐을 뿐 그녀에게 결론이 없었을까요… 수학자인 라이헤 박사는 독일인답게 이성적이고 지적이며 나스카 지상그림에 대한 학문적 탐구를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결론에 이르러 나스카 지상 그림을 "천문 캘린더"라고 정의합니다. 그러한 근거로 하늘의 별자리와 나스카 평원을 천체로 봤을 때 지상의 그림 위치가 동일하다는 주장을 펼칩니다.

 

수학자답게 각도와 거리를 꼼꼼히 계산한 결과였습니다. 그런데 그게 전부일까요? 그것이 올바른 결과일까요, 그것에 대해서는 누구도 확신하지 못합니다. 고도로 계산된 수학적 메시지가 숨어있지는 않을까요, 데이비드 벌린스키는 수학의 역사에서 "인간이 다루는 주제 가운데 수학만큼 많이 변하고 또 수학만큼 변하지 않는 것도 없을 것이다."라고 수학의 메시지 기능을 말합니다.

 

수학의 깊이는 발전한 만큼 보일 뿐입니다. 더 발전했을 때 수학은 더 깊게 보일 것입니다. 부정이 긍정을 낳는 주제로서의 수학, 우리의 한계점에서 나스카 지상그림의 메시지는 숨겨져 있는지 모릅니다.

 

생전의 마리아 레이헤 박사 초상화

 

작은 비행장에서 수시로 뜨는 비행기에 올라 그림을 맞춰나갑니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나스카 캠퍼스는 검은 도화지처럼 어둡고 두텁게 그러나 모나지 않고 일괄된 것이 펼쳐져 있습니다. 그 안에 빽빽이 그려진 메시지는 유심히 살펴보지 않으면 놓치기 쉽습니다. 소소하게 집착해서 본다면 하나도 보이지 않았던 수수께끼들이 하나 둘 그 실체를 보여줍니다.

 

누군가의 지적 세계를 따라가는 일은 정말 흥분되고 멋진 일입니다. 라이헤 박사가 추측한 천문 달력으로써 지상그림을 상상하고 하나씩 꿰어맞춰 가다가 윌리암 헨콕이 상상하듯 어떤 미지의 존재가 남긴 메시지라고 생각하며 눈을 감아봅니다. 모든 것이 가능한 일이고 모든 것이 가능함으로써 상상할 수 있는 자유가 그 안에 있습니다.

 

그것이 여행이고 여행자가 누리는 행복입니다. 삶에 묶여있던 내면을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꺼내는 일, 누군가의 상상여로를 따라가는 일, 나스카는 남미 여행을 어떻게 해나가야 할지를 메신저로써 저에게 천천히 다가옵니다.

 

나스카 지상을 관찰할 수 있는 경비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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