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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막

3월 말의 나미비아는 우기의 한 중간이랍니다. 안내 책자를 보니 일 년 중 가장 비가 많은 때가 1, 2, 3월로 표기되어 있고 그 중 3월이 가장 강우량이 많다고 표기되어 있습니다. 그래봤자 70mm 정도니, 많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우기의 한 중간이라 걱정스러웠습니다. 우려는 우려로 끝나면 좋으련만 저녁을 먹고 오는 데 비가 쏟아붓습니다. 빗줄기가 우리네 장대비같이 거칠게 후려칩니다. 나미브 사막은 세계 최초의 사막이고 사진가들이 꼽은 가장 사진을 찍고 싶은 사막이고 5번째로 큰 모래 사막이랍니다. 특히 일몰이 일품이라는 데 짙은 구름이 한 치 비켜설지 모르겠습니다.

 

밤새 걱정했건만 아침은 화창한 봄날같이 반짝입니다. 하루 늦게 도착한 우리에겐 행운이죠. 이틀간 큰 비가 와서 사막에 갔던 사람들이 아무것도 못보고 왔다는 말로 가이드는 첫 인사를 건넵니다. 누구 덕이던 날씨가 반겨주는 건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도요타 랜드 크루저를 타고 우리 셋과 독일 아가씨를 더해 넷이 한 팀으로 출발했습니다.

 

독일 아가씨는 4주간 출장업무를 끝내고 한 주를 자신을 위해 쓰는 데 그 선택이 나미브 사막이랍니다. 빈트후크는 나미비아 한 중간에 자리잡고 있어 대서양 연안의 나미브 사막까지 가려면 4시간 30분, 긴 거리를 가야합니다. 길은 대부분 비포장이지만 잘 관리된 듯 80km 이상으로 달리는 데 전혀 무리가 되지 않습니다. 빈트후크를 벗어나면 대부분 광활한 대지를 달립니다. 대지는 멋스러워서 가장 아프리카적이라고 표현할만합니다. 아프리카를 종단하며 이렇게 속삭이는 대지는 처음이었습니다. 에티오피아의 강열함과 또 다른 맛이었습니다.

 

그렇게 4시간을 달려 닿은 곳은 솔리티에레 카페입니다. 가이드는 애플 파이가 기가막히다는 말을 하네요. 길고 지루한 대지를 가로질러 온 나그네의 지친 마음을 달래주는 작은 카페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대서양으로 향하는 나그네들에게 오래도록 사랑받고 있습니다. 카페는 아주 성업중이네요. 이름을 세상에 널리 알린 결과죠. 그래도 카페이름은 아직도 솔리토리를 의미하는 솔리티에레입니다. 어느 나라 말인가 물어보니 이탈리아 말이라고 하네요.

 

나그네의 지친 마음을 달래주는 작은 카페, Solitiere Cafe

 

남아공에서 넘어온 사람이 처음 세운 카페라는 데 그의 부모님이 이탈리아인이거나, 이탈리아에서 이민을 온 모양입니다. 근세 이탈리아는 비교적 통일이 늦어 유럽에서 후진을 면치 못한 어려운 나라였습니다. 지중해 시대의 강자였지만 대서양이 멀어 대서양 시대엔 동참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근세에 들어서면 미국, 남미로 많은 사람들이 일을 찾아 떠납니다.

 

노동이민이죠. 그들의 애환이 담긴 탱고는 아르헨티나 보카 지구의 이탈리아계 부두 노무자들이 시작한 춤입니다. 미국 마피아도 그렇게 고향을 떠난 형제들이 시작한 거친 사업이었죠. 남아공은 농부뿐 아니라 모두가 살기 좋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유럽각지에서 사람들이 꿈을 갖고 몰려듭니다. 그 중 이 카페주인의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있지 않았을까요?

 

이런 카페가 남미대륙의 끝 파타고니아에 하나 더 있습니다. 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의 실제 주인공이기도 한 두 남자는 은행 열차를 털고 미국을 떠나 여기까지 왔었나 봅니다. 대륙의 끝이어서 충분히 안전했을텐데 불행히도 그들에겐 지독한 보안관이 따라붙죠. 결국 영화에서 보듯 폴 뉴먼과 로버스 레드포드는 폼나게 죽습니다. 작년 겨울 파타고니아의 오지 엘 챨텐으로 가는 도중 바람만이 스쳐가는 고독한 카페에서 커피와 애플파이를 시켰던 기억이 납니다. 남미의 카페는 정말 고독했는데 나미브 사막의 카페는 그에 비하면 흥청거립니다. 나미브 사막의 길목이어서 그렇겠죠.

 

오늘 숙소인 나우클루 롯지(Nauklu Lodge)는 정말 꿈 같은 전경을 가졌습니다. 일몰의 대지는 누구도 거부하기 힘든 마력으로 다가와 눈을 쏙 빼앗아 버립니다. 강아지풀 같은 흰 풀이 뒤덮힌 대지는 바람에 출렁이고, 지는 해의 빛을 받아 물들어갑니다. 변화하는 대지를 보다보면 카메라가 담아내기 어려운 내적 흥분이 일어납니다. 앞은 야생화 가득한 몽골초원을 대면한 듯합니다. 특히 광활함이 그렇습니다. 그런데 몽골초원만 있는 게 아닙니다.

 

뒤로는 붉은 산이 듬직히 좌정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氣運(기운)이 제일 좋다는 세도나의 색은 붉다고 합니다. 철성분이 많은 땅이라 그렇습니다. 氣(기)는 일종의 자기장이 아닐까요? 지구의 남극과 북극을 연결해 지구 전체를 감싸고 보호하는. 지구를 감싸는 기운이 우리 몸과 가장 소통하기 좋은 땅이 붉은 대지라니 나미브 사막도 세도나에 뒤떨어지지 않은 기운 좋은 땅 일겁니다. 기운 좋은 땅에 왔으니 대지의 기운을 듬뿍 받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야생화 가득한 일몰의 대지

 

둘째날은 새벽부터 서두릅니다. 국립공원이 6시 30분에 문을 열기 때문에 그 시간에 맞춰 5시 30분에 롯지를 출발합니다. 1시간을 달려 국립공원에 들어서면 붉은 모래톱이 길을 사이에 두고 마주합니다. 웹사이트에서 보던 멋진 일몰과 일출 사진을 어찌 찍어야 하는지 궁금했는데 그건 국립공원 안에서 숙박해야만 가능하답니다.

 

국립공원은 일출 이후에 문을 열고 일몰 이전에 문을 닫기 때문입니다. 아쉽군요.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만족합니다. 한 장의 사진을 위해 찾아온 작가가 아니니까요. 유명하다는 샌드 툰(Sand tune)에 올라 나미브 사막의 펼쳐진 모래더미들을 모아봅니다.

 

소수스브레이(Sossusvlei) 계곡

 

나미브 사막의 하이라이트라는 소수스브레이(Sossusvlei) 계곡은 5km나 됩니다. 차를 먼저 보내고 신발을 단단히 동여맵니다. 메마르고 달구어진 계곡이고, 거침없이 두드리는 햇빛의 농조를 온 몸으로 받아야 해서 모래계곡을 걷기가 쉽지 않습니다. 또 모래대지를 걷다 보면 평소 안 쓰던 근육을 쓰고 두 배의 힘이 다리에 들어가 쥐가 나기도 합니다. 그렇게 1시간을 걷다 보니 차가 저만치에서 기다립니다. 어느새 소수스블레이의 절반지점에 닿은 것입니다.

 

남은 거리를 차로 이동한 후 계곡 끝에 자리한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샌드 툰을 오릅니다. 높이가 300m나 되는 거대한 모래더미는 세 번이나 굴곡져있어 하나의 모래더미에 올라도 그 끝은 멀기만 합니다. 겨우 끝에 오르니 저 아래로 하얀 바닥이 드러난 채 모래더미에 둘러 쌓인 대지가 나옵니다.

 

소수스블레이 계곡이 끝나는 지점입니다. 예전엔 비가오면 소수스블레이 계곡에 물이 흘렀는데, 계곡물은 여기까지 흘러온 후 사라진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난 3년간 한 번도 물이 고인적이 없다는 군요.. 허옇게 배를 드러낸 땅은 내려가보니 흰 색의 진흙입니다. ‘데드블레이(Deadvlei)’ 로 불리는 이 곳엔 호수였던 과거의 흔적으로 말라죽은 나무들이 듬성듬성 서 있어 사막의 단조로움에 작은 화려함을 더합니다. 저도 나미브 사막을 대표하는 사진 중 하나라고 해서 한 장을 여기서 남깁니다.

 

돌아오는 길은 아침과 달리 한 낮의 빛으로 샌드 툰이 달구어져 마친 불붙은 듯 벌겋습니다. 특히 나미브 사막에서 가장 색이 곱다고 알려있는 툰45(45번째 샌드 툰)는 색감과 곡선이 인상적입니다. 툰45는 화염산을 생각나게 합니다. 삼장법사가 기고만장한 원숭이와 천방지축 돼지, 교활한 요괴을 대동하고 천축국으로 구도의 길을 떠나는 이야기 중 나오는 전설의 산입니다.

 

그런데 투르판에 가면 진짜 화염산이 있습니다. 중국의 화염산도 광물질을 많이 포함하고 있어 태양의 열기를 받으면 벌겋게 달아올라 마치 불이 난 듯 보입니다. 철광맥이 분해되 모래더미가 되었다는 나미브 사막의 툰45를 사진에 담아보니 쇳물을 삼각의 틀에 부은 것 같이 벌겋습니다. 화염산이나 툰45나 자신을 태워 보는 이를 경탄하게 만드는 살신의 산이 아닌가요?

 

국립공원을 나와 솔리티에레 카페에 들러 맥주를 한 잔 들이킵니다. 여행을 하다 보면 처음의 기대와 다른 게 있습니다. 소문난 식당은 맛이 별로라죠. 나미브 사막을 떠나며 제가 가진 느낌은 보기 좋은 그림이었습니다. 감동이나 크게 와 닿은 멋스러움은 없었습니다. 저에게는 나미브 사막으로 가는 동안 마주한 광활한 아프리카 대지가 감동적이었고 특히 롯지에서 밤새 별과 대지에 농락당한 저의 감흥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일몰 투어로 따라나선 작은 동산에서 맞은, 밤을 알리는 바람이 멋졌습니다. 밤을 알리는 게 꼭 어둠일 필요는 없죠. 여행은 개인의 느낌입니다. 소문만 쫓다 보면 헛 것만 보고 오죠. 볼 거리가 대단하다고 알려진 건 이제 마음을 크게 울리지 못하려나 봅니다.

 

아프리카 여행기는 '아프리카, 낯선 행성으로의 여행'(채경석 지음, 계란후라이, 2014) 단행본으로 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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