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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죽기전에 꼭 가볼 곳

‘죽기전에 꼭 가봐야 할 식당’이 있다는 소리에 열일 제쳐놓고 달려갑니다.  그것도 해안이름이 동회라네요. 동해로 가자. 강릉이든 속초든. 동회비치도 잔지바르 섬의 동쪽이니 우리나라 동해안에서 따온 것일까요? 원래의 일정은 능뀌해안에서 하루를 보내며 인도양의 일몰을 보려 했습니다. 여기저기 여행 블로그에서 빼놓지 않는 곳이 능뀌해안이기도 했고 우리의 여행 지침서 ‘안녕 아프리카’ 역시 찬란한 미사여구를 써가며 침이 마르게 설명합니다.

 

그런데 왠일인가요? 이디오피아 다나킬을 같이 여행한 브라질 청년은 3년간 세계일주를 하고있는 멋쟁이 총각인데 그 친구는 역으로 능뀌는 사람이 너무 많아 편하게 쉬기는 좋지 않으니, 동회비치로 가라고 권유합니다. 그 친구는 브라질에서 케이프타운을 거쳐 아프리카를 역으로 올라오는 중 우리와 이디오피아에서 만났으니 우리가 앞으로 갈 길에 대한 정보를 얻기 좋은 상대였습니다. 한 명을 더 만났습니다. 잔지바르에 둥지를 틀고 사는 한국청년입니다. 부인이 제 대학후배기도 하구요. 잔지바르가 좋아 다이빙 강사를 하며 사는 친구인데, 그 친구도 역시 능뀌는 사람이 많고 지저분하니 쉬려면 동회비치로 가는게 좋다고 말하더군요. 도대체 무슨 해프닝인가요?

 

여행이란 항상 그런거지요. 대단한 미사여구에 끌려 그 곳에 가면 이미 황폐화되어 있거나 그저 그런.. 아마도 능뀌비치는 너무 유명해서 그동안 몸둥이가 헤지고 단 모양입니다. 그래도 한국의 여행자들이 극찬한 능뀌인데… 누가 더 전문가일까요? 손바닥에 침이라도 뱉어 튀겨보고 싶습니다. 대부분의 여행자는 평생 한 번 그 곳을 가보지 않을까요? 그러니 최고를 선택하길 바라지요. 그런데 남에게 최고라고 내게도 최고일까요? 능뀌는 분명 최고일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여행자들이 느꼈던 그 많은 설렘이 다 거짓일테니까요.

 

그런데 우린 다음 한 마디에 능뀌를 포기했습니다. “동회에 가면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식당이 있습니다.” 이런 표현은 영국의 BBC방송이나 National Geography가 자주 쓰던 명 카피지요. 죽음은 절대 명제니까 아마도 그 정도 강도로 권한다면 이건 안 가보면 안되는, 마치 크게 밑지거나 빼먹은 듯한 기분일 것입니다. ‘죽기 전에 가봐야 할 식당’, ‘세계 7대 자연’, ‘7대 불가사의’. 요즘은 그런데서 좀 벗어 났는지 ‘올해 꼭 가볼 여행지’로 문구를 바꾸었답니다. 하여튼 ‘죽기전에 꼭 가봐야 할 식당’이라기에 동회비치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동회해변에 큰 바위위에 위치한 ‘죽기 전에 꼭 가볼 식당

 

현무암 암반층에 살짝 올려놓은 식당이 해안가에 위태롭게 서 있습니다. 오래전 이 곳을 찾은 여행자는 찰랑이는 물을 가르며 식당에 닿아 생각지도 못할 만큼 싼 해산물을 잔뜩 시켜먹고 늦은밤까지 맥주를 들이키며 바다가 흘리는 소리를 즐겼을 것입니다. 이 곳을 소개한 여행자는 필력이 있는 기자였거나 작가는 아니었을까요? 여하튼 세상 곳곳으로 복음은 전파되었고 가벼운 한 줄의 추천문구를 법문처럼 낭송하는 여행객들이 몰려 들었을 것입니다. 그때부터 식당은 변신을 시작하지요.

 

겉치장을 다시 하고 지붕을 손보고 테이블 수를 넓히고 내부도 깔끔하게 손 본 것 같습니다. 제법 깔끔하고 제법 비싸고 제법 붐빕니다. 또 한 발 늦은 것이지요. 능뀌나 동회나 ‘죽기 전에 꼭 가볼 식당’은 오래 전 지나간 여행객들의 것이지, 저에게는 아니었습니다. 나의 ‘죽기 전에 꼭 가볼 식당’은 어딜까요?

 

바다를 보고 있으면 집중이 안되고 번잡하기만 하고 그렇습니다. 매력적인 몸을 과시하는 여자는 왜 바다에만 모일까요? 산에서는 칭칭 몸을 감는 걸로도 부족해 잘 씻지도 않으니 이쁘게 보이는 여자를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니 잔지바르에서 보낸 사흘, 눈이 번거로울 수 밖에요. 그래도 산이 좋으니 그만 잔지바르를 탈출할 방안을 하루종일 궁리합니다.

 

비행기로 갈까요? 쾌속선으로 갈까요? 다우선을 타볼까요? 다우선은 인도양을 주름잡은 선박입니다. 인도양은 몬순이라 불리는 계절풍이 규칙적으로 서에서 동으로 부는데, 태풍 같은 거센 바람이 없고 미풍이라고 할 만큼 늘 일정한 속도로 가벼운 바람이 불어옵니다. 그래서 다우선은 삼각돛을 하나나 둘만 달고도 거대한 인도양을 무리없이 섭렵했습니다. 그렇게 몬순의 도움을 받아 다우선은 수백년동안 인도양의 지배자였습니다. 배 형태는 이집트에서 본 펠루카와 비슷한 모양입니다. 만약 인도양에서도 대서양이나 태평양같이 태풍이 불고 거센 비바람이 휘몰아 쳤다면 보다 강한 돛을 단 거대 함선을 제작했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인도양의 해상전력이 강해져 유럽의 해상진출은 백년 더 늦어졌을지도 모릅니다.

 

하여튼 우린 다우선을 타고 다르에살람으로 가려했습니다. 하지만 용기가 부족했습니다. 우선 7시간이 걸린다는 말에 멈칫했구요. 작년에 배가 뒤집혀 여러 사람이 죽었다는 말에 다시 멈칫, 그리고 비 구름이 몰려와 뒤돌아 섰습니다. 배를 타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7시간 이상이면 배 멀미도 어찌 견딜지 두렵기도 하구요. 다시 한 번 배를 타고 멀리 미국까지 실려간 많은 영혼에 고개 숙여집니다. 그들은 열악한 배 바닥에서 지내다 하나둘 쓰러졌고 그 중 강한 자만이 살아남았습니다. 그렇게 어려운 과정이었기에 10명 중 8명이 죽어났다는 말을 하겠지요.

 

요즘 TV를 보면 모든 스포츠에서 흑인들이 뛰어난 실력을 보입니다. 특히나 신대륙의 흑인들의 실력이 월등합니다. 그렇게 강한 사람들만이 살아남았으니 신대륙의 흑인들은 아프리카 흑인들보다 분명 체격이 크고 체력이 강하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의사는 죽으면 지옥을 간다지요. 염라대왕이 때가 되서 부르는데 아무도 오지 않아 무료했나 봅니다. 저승사자를 풀어 상황을 알아보니 의사가 각종 약을 주어 못가게 막는다는 군요.

 

그러니 염라대왕한테 의사는 꽤나 미운 존재일 것입니다. 하지만 의술의 도움이 없는 자연상태에서는 강자만 살고 약자는 도태됩니다. 그렇게 살아남은 사람이 신대륙 흑인이니 그들이 세계 스포츠계를 휘어잡는 건 당연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수영에서는 흑인이 두각을 나타낼 수 없답니다. 그러고보니 육상은 절대적이구요. 축구, 야구, 농구, 배구, 골프, 테니스까지 뛰어난 흑인 선수들이 세계 스포츠계에 우뚝 서 있습니다. 그런데 수영에는 유명한 선수가 하나 없습니다. 백인이 흑인과 수영하는 걸 싫어해서 수영할 기회가 없었을 뿐이라는 비아냥이 있었는데, 그것만은 아니랍니다.

 

흑인은 피부가 매끄럽고 단단합니다. 잡티가 없고 정말 깔끔한 피부를 가졌습니다. 어쩌면 까매서 안 보이는 걸까요? 나무 중에도 흑단은 단단하기만 한게 아니라 무거워서 물에 가라앉습니다. 보통의 나무는 다 물에 뜨는데 말이지요.  흑단이 얼마나 밀도가 높고 실신한지 추측할 수 있습니다. 나무로보면 흑인이 흑단이라는군요. 그들은 세포가 조밀해서 무겁답니다. 그래서 피부가 단단하고 밀도가 높아 탄력이 좋답니다. 흑인의 타고난 탄성과 유연성도 그런 연관성이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백인이나 황인과 달리 물에 잘 뜨지 않는답니다. 밀도가 높으니 부력이 그만큼 줄어들겠지요. 믿거나 말거나 인데요. 어느 스포츠 용품 회사 사장님의 말씀이니 믿어야 할 것 같습니다.

 

동회해변에 뛰어노는 아이들

 

현지에서는 Rocky Restaurant로 불리는 ‘죽기전에 꼭 가봐야 할 식당’을 나오며 산호와 용암바위가 만든 동회해안에 둥지를 틀고 바다를 입질했습니다. 에메랄드빛 색감과 강렬한 태양, 바다와 조화를 이룬 리조트의 인테리어, 멋진 몸매의 서양아가씨들. 바다와의 첫 대면은 항상 “와”하는 탄성으로 시작됩니다. 그런데 첫 대면이 그게 최고조이지요.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흥분이 사그러들며 지루해집니다. 물론 제 경우입니다. 물에 한 번 들어갔다 와도 별반 마찬가지입니다.

 

애꿏은 맥주나 하나둘 자빠뜨릴 뿐입니다. 지루함은 쉽게 해소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읽다가 미루어둔 책을 마저 꺼내 들었습니다. 할레드 호세이니가 지은 ‘천개의 태양’입니다. 관습에 묶인 여인의 삶을 그린 슬픈 책이었고 여기에 아프가니스탄이라는 전쟁환경이 여인들에게 강요하는 고통도 들어있습니다. 읽어갈수록 가슴이 찌릿해, 글 속 주인공에게 허락된 삶의 권리를 생각해봅니다. 아프리카로 오는 비행기에서 본 집사(Butler)라는 영화는 하나의 명제를 시사합니다. ‘시민 평등권’이라는 생소한 단어가 자연스럽게 인식되기까지 무엇이 필요한지 영화는 찬찬히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아프가니스탄의 봄은 아직 멀리 있다고 합니다. 관습 때문이지요. 관습이란 삶의 방식이어서 환경의 변화에 따라 바뀌어야 함에도 쉽게 바뀌지 않는 건 관습에 편승해 향유하는 세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세력에 맞서 세상을 변화시킨 사람들을 생각하며 바닷가의 한나절을 보냅니다. 그러고보니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식당은 죽기 전에 가봐야 할 사바나 대지와 죽어도 잊어서는 안될 야만의 역사를 간직한 땅에 있었습니다.

 

아프리카 여행기는 '아프리카, 낯선 행성으로의 여행'(채경석 지음, 계란후라이, 2014) 단행본으로 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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