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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원의 미국 야생동물] 하늘의 독수리보다 훨씬 무서운 인간 독수리들

[노트펫] 커다란 날개를 가지고 유유히 창공을 나는 하늘의 제왕 독수리(vulture, 이하 벌처)는 반전이 있는 동물이다.

 

벌처는 자기 힘으로 살아 있는 먹잇감을 사냥하는 것보다는 주로 죽은 동물의 사체나 다치거나, 병들어서 거동이 불가능한 동물들만을 먹잇감으로 삼기 때문이다. 벌처는 용맹한 사냥꾼이 아니라 유능한 청소동물인 셈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도 대자연의 벌처와 비슷한 행동을 하는 존재들이 있다.

 

일명 ‘인간 벌처’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은 사체만을 찾는 자연 속의 벌처처럼 파산하기 직전의 기업이나, 이미 파산한 기업들만 찾아다닌다. 따라서 인간 벌처의 예민한 시각과 후각은 마치 사체만 찾는 독수리의 감각기관처럼 재무구조가 견실한 기업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인간 벌처들이 찾는 기업은 건실한 기업이 아닌 부실한 기업이다. 하지만 그들은 자연계의 벌처들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자연계의 벌처들은 죽은 동물을 노리지만 인간 벌처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 벌처의 눈과 코는 지금 당장은 어렵지만 외과적 수술을 통해 가까운 미래에는 소생 가능한 기업이거나 그렇게 보이는 기업만을 목표로 한다. 이렇게 자연계의 벌처와 인간 벌처는 비슷하지만 차이가 있다.

 

인간 벌처와 대자연의 벌처의 차이점은 먹잇감을 보는 시각의 차이 때문에 발생하게 된다. 인간 벌처는 현재가 아닌 미래의 이익 발생을 목적으로 행동하는 반면, 자연계의 벌처는 당장의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움직인다.

 

싼 가격에 기업을 인수한 인간 벌처는 온갖 선진 경영기법을 구조조정이라는 미명 하에 기업에 적용하여 살리려고 노력한다. 그리하여 해당 기업이 회생에 성공하거나, 그럴 가능성이 보이면 적절한 매수자를 찾아, 그동안의 노력에 대한 대가를 붙여 판다.

 

이렇게 위험을 감수하고 부실한 기업을 인수하여 공격적인 투자를 실시하고, 되팔아 이익을 챙기는 회사나 기금을 벌처펀드(vulture fund)라고 부른다.

 

세계경제의 중심지 뉴욕. 각종 선진 경영기법을 동원한 다양한 기업들이나 펀드들이 활동하고 있다. 2018년 4월 촬영  

 

그런데 벌처펀드의 사냥 목표는 비단 부실한 기업에 결코 국한되지 않는다. 인간 세상의 벌처는 돈만 되면 기업보다 훨씬 덩치가 크고, 존재도 중요한 존재도 덥썩 물어 공격한다.

 

인간 벌처들의 공격 대상은 상대적으로 취약한 경제구조를 가진 국가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그들은 그런 나라들의 경제 동향을 수시로 살펴본다.

 

특히 경제위기 중이거나 그럴 가능성이 있는 국가들이 발행한 국채를 헐값으로 인수하여, 후일 재판이나 담판 등을 통해 최대한 많은 수익을 뽑아내는 것을 좋아한다. 이런 행위는 누군가에는 엄청난 고통이 될 수도 있겠지만, 인간 벌처에게는 엄청난 이익이 될 수도 있다.

 

해외의 모 벌처펀드는 경제위기가 잦은 아르헨티나의 국채를 발행가에 한참 못 미치는 1억 달러 정도 구입했다가, 나중에 수십 배에 달하는 금액을 받아내기도 했다.

 

이런 예를 보면 대기업 심지어 국가라도 늘 견실한 재무구조를 갖춰야 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렇지 않고 방만하게 경제를 운영하다가는 유동성 위기에 빠질 수 있고, 이익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인간 벌처들의 공격 대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자연계의 벌처는 사체를 해체하여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인간 벌처는 선순환이 아닌 자신의 이익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덤비므로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이강원 동물 칼럼니스트(powerranger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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