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컨텐츠 바로가기
뉴스 > 칼럼 > 칼럼

[고양이와 그 친척들] 연못을 깊이 판 아버지의 혜안

 

[노트펫] 유행(fashion)은 특정 시대 사회 구성원 사이에서 반복되고 공유되는 현상이다. 변화에 민감한 방송은 유행을 선도하는 역할도 마다하지 않는다. 얼마 전까지 방송가에서 유행을 이끈 프로그램 중에는 맛난 음식을 소개하고 이를 먹는 먹방이 있었다.

 

그런데 유행은 고인 물이 아닌 흐르는 물과 같다. 최근에는 실용적이면서도 멋진 집을 시청자에게 보여주는 집 소개 프로그램이 먹방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그런 방송이 유행을 타는 것은 내 집 마련이 하늘의 별을 따는 것처럼 어려운 현실과도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얼마 전 본 프로그램 중에는 주택에 연못을 만들어 현관의 역할을 대신 하도록 하는 집이 소개되었다. 그런데 그 연못은 수심이 얕아서 동네 길고양이들이 물고기들을 종종 해치는 사고가 발생하였다는 부연 설명이 있었다. 그 장면을 보면서 수십 년 전 유사한 상황에서 필자의 아버지가 하신 말씀과 행동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재학 시절 가족들이 힘을 모아 마당에 연못을 만든 적이 있었다. 아버지, 어머니는 물론 필자를 포함한 아들 삼형제가 모두 달라붙어 일을 했다. 땅을 파는 일은 고되다. 연못이 생긴다는 기쁨이 아무리 커도 육체적인 피로는 즐거움을 괴로움으로 만들어주었다.

 

초등학생의 눈에는 꽤 깊은 지점까지 땅을 팠다. 하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계속 땅을 파고 계셨다. 멈출 기세가 보이지 않았다. 참다못해 “언제까지 땅을 파야해요?”하고 눈을 흘기며 말했다. 그랬더니 아버지는 대답 대신 당신의 손으로 삽질을 지켜보던 우리 집 고양이를 가리키셨다. 그리고는 다시 땅을 파기 시작했다.

 

그날 저녁이 돼서야 아버지는 땅파기를 중단했다. 만세 삼창이라도 부르고 싶었다. 아버지는 저녁 식사를 하며 아까 대답을 하지 않았던 부분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셨다.

 

“고양이는 빠르게 움직이는 작은 동물들을 좋아한다. 그래서 쥐는 물론이며 나비나 새 같은 동물들을 따라다닌다. 그런데 물속의 동물도 예외는 아니다. 연못 속의 물고기를 빤히 지켜보다가 고양이는 언제든지 물고기를 물 밖으로 꺼낼 수 있다. 물고기는 고양이에게 언제든 당할 수 있다. 고양이의 앞발은 사람의 손과 같다. 이동 수단에 불과한 개의 앞발과는 기능이 전혀 다르다."

 

"하지만 물이 깊어지면 고양이의 민첩함은 별다른 소용이 없어지게 된다. 물고기는 고양이의 앞발을 피해 깊은 곳으로 자신의 몸을 숨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까 힘들어도 연못을 깊게 판 것이다. 만약 고양이가 연못 속의 물고기를 꺼낸다면 우리 고양이는 주인 가족들의 미움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런 일은 우리 누구도 원치 않는다. 아빠는 그러지 않기 위해 가급적 연못을 깊게 판 것이다.”라고 말씀해주셨다.

 

ⓒ노트펫
먹이를 먹기 위해 수면 위로 올라오는 비단잉어 무리. 사십여 년 전 필자 가족이 열심히 팠던 연못에도 이런 잉어들이 살았었다. 2018년 2월 미국 미주리주에서 촬영

 

고양이는 분명 사람의 눈에는 작고, 귀엽고, 예쁜 동물이다. 하지만 작은 동물들에게는 그렇지 않다. 그들에게 고양이는 엄연한 사냥꾼이다. 아버지는 수십 년 전 그런 점을 인지하고 미연에 예방 조치를 취한 셈이다. 심모원려(深謀遠慮), 깊이 생각하고 멀리 내다본다는 뜻이다. 연못을 팔 때 아버지가 바둑판에 던진 긴 포석 같이 느껴진다.

 

이강원 동물 칼럼니스트(powerranger7@hanmail.net)

 
목록

회원 댓글 0건

  • 비글
  • 불테리어
  • 오렌지냥이
  • 프렌치불독
코멘트 작성
댓글 작성은 로그인 후 작성이 가능합니다.
욕설 및 악플은 사전동의 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스티커댓글

[0/30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