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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원의 미국 야생동물] 여유만만 플로리다의 두루미

[노트펫] 낭중지추(囊中之錐)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주머니 속의 송곳이라는 뜻이다. 풀어서 해석하면 능력이 출중한 사람은 아무리 그 재주를 가리거나 다른 사람들 사이에 숨어있어도 눈에 띄게 된다는 뜻이다.


낭중지추와 비슷한 사자성어가 있다. 계군일학(鷄群一鶴), 직역하면 닭의 무리에도 학이 한 마리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어느 무리에서나 비범한 사람이 한두 명 정도는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서 가장 흔한 새인 닭의 비교 대상으로 왜 학을 선택하였느냐는 의문이 생긴다. 합리적인 의심이다. 학이 선택된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충분히 숨어있다. 학은 오래전부터 동양 문화에서 신성한 동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우리 선조들은 거북이와 더불어 학을 장수하는 동물로 여겼다. 학은 천년을 산다고 여겼고, 거북이는 무려 만년을 산다고 여겼다. 학은 배가 고프다고 해서 게걸스럽게 먹지 않고 배불리 먹지도 않는 우아한 새라고 생각했다. 또한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경망스럽게 행동하지 않고 선비의 체통을 지키듯이 점잖게 움직인다고 보았다.

 

학은 다른 새들보다 외모도 수려하다. 학은 마치 흰옷에 검은 갓을 쓴 품위 있는 키가 큰 선비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 높은 산이나 하늘에 사는 신선들이 학을 타고 다닌다고 믿기도 하였다. 이렇게 학은 체통을 중시하고 우아함을 좋아하였던 선조들이 선호할 조건을 갖춘 새라고 말할 수 있다.

 

학의 우리 이름은 두루미다. 두루미는 새의 울음소리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두루미의 우는 모습을 직접 살펴보니 울기 직전에 목을 길게 빼고 뚜루뚜루하는 소리를 내었다. 그 소리를 들은 후부터는 학보다는 두루미가 훨씬 정감 있게 느껴졌다.

 

미국에도 한국처럼 학이 살고 있다. 한국에서는 캐나다 두루미라고 불리는 샌드힐 크레인(sandhill crane)이 바로 그 학이다. 그런데 이 새의 개체수가 많지 않다보니 샌드힐 크레인이 사는 각 주에서는 샌드힐 크레인에 대한 사냥을 엄격히 금지하고 보호하고 있다.

 

 

샌드힐 크레인들이 사는 지역에 있는 안내판, 샌드힐 크레인들이 차에 치이지 않도록 감속하라고 알려주고 있다.

2018년 1월 플로리다 웨스트 팜비치에서 촬영

 

 

미국 최남단의 플로리다에도 샌드힐 크레인이 산다. 대한민국보다 더 큰 면적을 가진 플로리다의 샌드힐 크레인 개체 수는 5천 마리에 불과하다. 그래서 플로리다 주정부에서는 이 새의 보호를 위해 많은 공을 들인다. 샌드힐 크레인이 사는 지역 곳곳에는 사진과 같은 안내문을 붙여두었다.

 

운전하는 사람들은 일이 있어서 바쁘겠지만 학은 바쁠 일이 없다. 학이 천천히 움직여서 편안하게 사진을 촬영할 수 있었다.

2018년 플로리다 웨스트 팜비치에서 촬영


그런데 샌드힐 크레인들은 당국에서 철저히 보호받는 존재라는 것을 마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위의 사진 속의 샌드힐 크레인은 차도를 건너면서도 당황하지 않고 우아한 자세를 지키면서 천천히 횡단하였다.

 

다람쥐나 사슴 같은 동물들은 차에 치지 않으려고 재빠르게 움직이지만 이 새는 차들이 자신을 치지 않고, 피할 것이라는 것을 확신한 듯이 걸어서 횡단하였다.

 

그 순간 새의 날개는 더 이상 나는 용도로는 사용하지 않는 장식품 같아 보였다. 운전자들도 샌드힐 크레인과 마찬가지였다. 그 누구도 경적을 울리거나 무리하게 샌드힐 크레인을 피해서 운전하지 않았다.

 

가만히 샌드힐 크레인이 도로를 건너갈 때까지 기다려 주었고 지켜봐 주었다. 마치 여기는 새의 땅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보였다. 새와 사람이 같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이강원 동물 칼럼니스트(powerranger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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