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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사 처방제 대상 약품 지정을 둘러싼 진실

[기고] 전채은 동물을위한행동 대표
"수의사라는 전문직업인에 대한 이해와 동물의료보험 제도 도입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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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백신 자가주사로 인한 부작용 사례. 주사 부위의 피부 궤양, 화농성 혈종 발생. 접종 후 10%의 개와 고양이가 두드러기, 구토, 설사 등을 호소하며, 아나필락시스(Anaphylaxis)쇼크가 발생하여 사망에 이르기도 하고, 주사바늘이 체내로 들어가거나 보호자가 백신주사에 찔려 인간 동물 매개 질병 발생의 위험도 제기된다. ⓒ 반려동물의료복지위원회 

 

최근 농림축산식품부가 개 고양이 종합백신과 심장사상충 예방약 등을 수의사 처방제 대상 약품으로 추가 지정했다. 대상이 된 것은 백신의 경우 DHPPi라고 불리는 디스템퍼, 전염성 간염, 파라인플루엔자, 파보 바이러스를 예방하는 개 4종 종합백신과 고양이 3종 종합 백신 그리고 이버멕틴 성분의 심장사상충 약 등이다.

 

사실 백신 등을 수의사가 접종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해 보이는 일인데 놀라운 것은 이 상식이 최근 논란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정부의 발표에 약사회는 즉각 성명을 발표하여 반발하고 있다. 일반인들조차 "개 많이 키우는 집은 어떻게 하라는 거냐"는 반응이다.

 

수의사가 아닌 일반인들에 의한 자가 진료가 논란이 된 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였다. 2016년 동물농장을 통해 알려진 '강아지 공장' 사건에서 번식견을 대상으로 한 제왕절개 수술, 호르몬과 항생제를 남용하는 불법진료 행위가 있었다. 이것은 명백하게 수의사법 위반이었으나 가해자는 경미한 처벌을 받았다. 농장주들을 배려한 '동물에 대한 자가 진료 허용 규정' 때문이었다.

 

이에 많은 동물보호단체의 항의가 잇따랐고 농림축산식품부는 2017년 7월 수의사법 개정을 통해 수의사가 아닌 사람이 진료할 수 있는 범위를 일반 '동물'에서 '가축(소, 돼지, 닭, 오리, 말, 염소, 당나귀, 토끼 등)'으로 제한했다. 즉 반려동물에 대한 자가 진료 행위는 명백히 불법이 된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반려동물에 대한 자가 진료로 인한 사고는 종종 발생하고 있다. 최근 한국동물병원협회, 데일리벳이 출간한 '반려동물 자가 치료 사례집'에는 50여 건의 다양한 자가 진료 부작용 사례가 소개되었다. 감기증상을 보여 약국에서 구입한 감기약을 먹고 발작 증세를 일으킨 말티즈, 사람이 먹는 감기약을 먹고 혼수상태에 빠진 후 죽은 푸들 등 다양한 사례가 있었다.

 

사실 사람과 개, 고양이, 소, 돼지, 닭 등은 모두 생리적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모두 같은 약을 주었다가는 부작용을 피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가 진료로 인한 사고는 끊임없이 발생하고 수의사 처방제 대상 약품 지정에 사람들은 왜 저항하는 것일까.

 

수의사의 진료비를 둘러싼 오해

 

여기에는 몇 가지 잘못된 오해가 있다. 우선 동물병원 진료비가 너무 비싸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가 진료를 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동물병원 진료비가 비싼 이유는 간단하다. 동물을 대상으로 한 의료보험 제도가 없기 때문이다.

 

사람의 의료는 국민의료보험제도를 통해서 소득이 낮은 국민일수록 개인 부담금은 줄고 보험 혜택은 받을 수 있게 되어 있다. 반면 동물의료보험은 개별적으로 가입하여 납부하게 되니 보험 혜택도 비례하여 보상받는 구조다. 즉 보험 혜택을 많이 받고 싶으면 그만큼 보험료를 많이 내야 한다.

 

동물을 진료하는 목적은 질병을 조기에 진단하여 빠르고 완벽한 치료를 하기 위함이다. 조기에 제대로 진단하기 위해서는 의료 장비가 필요하며 대부분 수억대에 달하는 비용을 들여야 구입가능하다. 좋은 장비를 갖춘 동물병원은 당연히 진료비가 비쌀 수밖에 없다.

 

여기에 환자에 대한 서비스가 추가된다. 환자의 보호자가 잊지 않도록 예방접종 및 건강검진에 대한 안내 문자를 보내주고 챙겨주는 동물병원일수록 진료비와 상담료가 추가로 발생할 수 있다.

 

소비자들은 자신이 받은 서비스만큼 비용이 발생한다는 사실은 잊고 진료비를 덜 받는 동물병원 수의사, 봉사활동을 가는 수의사를 칭찬하고, 진료비가 비싼 동물병원 수의사는 '도둑놈'이라는 인식이 깊게 박혀 있다. 과연 동물병원 진료비는 아무 이유 없이 비싼 것일까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수의사라는 전문 직업인에 대한 이해 필요 

 

이번 농림축산식품부의 발표에 따라 약사회는 "반려동물에게 피하주사를 놓는 것은 위험하지 않다. 동물약국에서 팔린다는 것은 구하는 사람도 여전히 있다는 것"이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심장사상충 약에 대해서도 "기생충 약을 처방약품으로 묶는 건 과도하다"고 언급했다.(<한겨레> 2020년 5월 13일 자 기사)

 

그러나 수의사들은 심장사상충 약도 엄격히 말해 진료를 받고 처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심장사상충 약은 성충을 체내에서 죽이는 성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부작용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모두 뭉뚱그려 기생충 약이라고 하기에 성분이 체내에 들어간 이후 전문적 관찰이 필요한 사항이다.

 

또한 피하주사는 주사를 놓는 행위뿐 아니라 그 주사제의 성분이 문제일 수 있다. 여기에서 왜 수의사는 6년간 교육을 받아야 하고 국가시험을 통해 면허를 부여해주는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수의사가 처방하는 약품은 전문인들을 통하지 않고 마구 유통되고 사용되었을 때 동물뿐 아니라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고 결국 공중보건상에 큰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

 

백신의 예를 들어보자. 공중보건 측면에서 생물학적 주사제가 일반인들에게 유통되면 매우 위험할 수 있다. 백신은 바이러스를 약독화하거나 사독화시킨 생물학 제재이기 때문이다. 동물병원에서는 생물학적 감염물질이 묻어있는 주사바늘과 폐백신은 의료폐기물로 처리하는데 그 중에서도 위해성의료폐기물로 별도로 분류하여 처리된다. 이런 생물학적 제재가 일반가정뿐 아니라 개농장, 번식농장에서 쓰이고 마구 버려져 왔다는 것은 아찔한 일이다.

 

반려동물은 가족이라면서

 

수의사 처방제는 지속적으로 확대되어 오는 추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저소득층의 부담이 늘어날지 모른다는 우려가 크다. '돈 많은 사람만 반려동물을 키우라는 소리냐'는 불만이다. 진료비가 늘어날수록 가난한 사람들은 개들을 버릴 것이라는 생각은 오해에 불과하다.

 

지난 15년간 동물보호단체에서 일하면서 반려동물 관련된 수많은 시민들을 만났지만 동물을 학대하거나 버리는 것은 재산 여부와 그다지 상관이 없었다. 동물을 학대하거나 버리는 사람들은 가난하거나 돈이 많거나 갖가지 이유를 들어 동물을 버리고 학대했다.

 

오히려 최근에는 서울시와 경기도 등 다양한 지자체에서 저소득층을 위한 중성화 수술 등을 지원해주는 곳도 많다. 최근에는 수의사회를 통해 중성화 수술 봉사활동도 많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문의하여 혜택을 받아보라고 권하고 싶다.

 

무엇보다 향후 시민들 사이에 이런 인식이 자리 잡을 필요가 있다. 반려동물과 함께 살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경제적인 뒷받침이 되어 있어야 한다. 냉혹한 조언 같지만 그것이 현실이다.

 

'개 많이 키우는 집은 어떻게 하라는 거냐?' 질문에 정확한 답은 이거다. "돈이 없다면 개를 많이 키워서는 안 됩니다."

 

동물의료비 제도 개선 필요

 

오히려 이번 조치가 무분별한 개농장과 번식농장에 타격을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제까지 농장들은 자가 진료로 버텨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의사 처방에 의해서만 예방접종과 치료를 해야 한다면 그들은 결국 문을 닫게 될 수 있다. 그동안 개농장과 번식농장은 동물학대의 온상이라는 의혹을 받아왔다.

 

한편으로는 유기견들을 보호하고 있는 쉼터와 사설보호소는 어떻게 하냐는 우려도 있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유기견 또한 소수의 사람들이 무리하게 돌보는 관행도 줄여나갈 필요가 있다. 선의로 시작했지만 결국 동물방치 사건으로 끝난 유기견 보호소가 대표적으로 애린원이었다. 정부가 사설 유기견 보호소 역시 신고제를 도입해 관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운 것은 그런 배경에서였다.

 

15년간 이 일을 해왔지만 한 번도 구조한 동물을 공짜로 치료해달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 적절한 진료에는 그에 맞는 치료비를 지불해야 한다. 또한 동물보호단체도 자신의 예산과 역량에 맞지 않는 무리한 구조를 하지 않겠다는 의지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동물을 보호하고 동물복지의 원칙을 지킨다는 것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우리가 반려동물의 건강을 위해 전문적 식견을 가진 수의사의 도움을 받는다면 그에 대한 존중 역시 필요하다. 내가 아는 수의사들 중에서도 동물구조와 보호에 기여하는 사람들은 많다.

 

대구의 한 동물병원은 유기견으로 가득하다. 40여 마리의 개들이 싫어 병원을 찾지 않는 사람들도 있지만 오히려 그 따뜻한 마음에 고마워해 찾는 분들도 있다. 이번 정책을 기회로 동물의료비 제도 개선에 나설 필요가 있다. 동물 진료비가 개개인에게 큰 부담으로 다가오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할 일이 더 많아졌다.

 

*기고문은 오마이뉴스에도 함께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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