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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쌤의 수의학 이야기] 청진기로 듣는 고양이 골골송은

수의사의 청진기 사용법

 

대중적인 의사의 상징은 흰 가운, 그리고 목에 두르고 있는 청진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돌잔치에서 아기의 미래를 점쳐보는 돌잡이 행사에서도, 책이 학자나 교수를 상징하고 법봉이 법조인을 상징하는 것처럼 의료인을 대표해 청진기가 올라갈 정도니까요.

 

실제로 청진기를 목에 두르고 다녀보면 상당히 불편합니다.

 

수의학에서 청진기는 동물의 몸 속 소리를 듣기 위해 사용됩니다. 사람들은 흔히 심장 박동을 측정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것 아니냐고 묻기도 하지만, 심장 소리 뿐만 아니라 폐에서 숨을 쉬는 소리나 장이 움직이면서 내는 소리도 들어볼 수 있습니다.

 

강아지나 고양이와 같은 소동물은 물론, 소나 말과 같은 대동물의 질병을 진단할 때도 사용됩니다. 내부 장기의 위치가 바뀌거나, 위나 장이 팽창되어 있을 때 청진기를 대고 몸을 두드려 보면 평상시와는 다른 소리가 나는 것이지요. 이를 청타진이라고 합니다.

 

또한 청진기의 넓은 면만 사용하는 것으로 아시는 경우도 있지만, 일반적인 청진기의 끝 부분인 청진판은 상대적으로 다양한 주파수를 잘 들어볼 수 있는 넓은 면인 다이아프램(Diaphram), 그리고 좁지만 고주파음을 잘 들어볼 수 있는 벨(Bell)로 이루어져 있어서 경우에 따라서 양쪽 모두 사용이 가능합니다.

 

저도 이런 내용은 수의과대학에 입학하고 나서야 알았죠. 

 

최근 일선의 의사 선생님들은 환자, 특히 여성 환자의 경우 상의를 들어올리고 왼쪽 가슴에 청진기를 대는 일을 불쾌하게 여기는 경우가 많아서 점점 청진기를 쓰지 않는 추세라고 하는데요. 동물 환자의 경우 성별을 불문하고 직접 '불쾌하다'고 말하는 경우는 본 적이 없습니다. 다행한 일이지요.

 

대신 이런 경우는 있었습니다. 병원에 내원한 고양이가 청진을 하려고 보니 연신 골골송을 부르는 바람에 청진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골골송을 청진기로 들어보면 공사장 드릴 소리처럼 다른 소리들을 모두 덮어버리기 때문에(...) 심장 청진을 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눈 앞에 장난감을 흔들어서 주의를 집중시켜, 잠시나마 골골송을 멈추고 간신히 청진을 하는 데 성공했답니다.

 

순간 고양이가 기차 화통을 삶아 먹은 줄 알았어요. 

 

폐와 같은 호흡기를 청진할 때도 사람의 경우 '숨을 들이쉬세요, 내쉬세요' 하는 지시에 맞춰서 폐가 내는 소리를 들어볼 수 있지만, 동물 환자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수의사가 동물의 호흡에 맞춰서 청진을 해야 합니다.

 

청진기가 점차 사용되지 않는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의사 선생님들과 비슷한데요, 과거보다 의료기기가 발달하면서 엑스레이나 초음파 등의 영상진단 기기를 이용해 내부 장기의 상태를 시각적으로 정확히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 환자분들 역시 청진보다는 눈에 보이는 소견을 훨씬 더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 보니 점점 의료현장에서 청진기의 자리는 줄어들고 있습니다. 

 

청진기는 1816년 라에넥이라는 프랑스 의사에 의해 처음 개발되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단지 종이를 세 장 겹쳐서 둘둘 말아 풀로 붙여놓은 원시적인 형태였다고 하는데요.

 

200년이나 되는 역사를 거치며 현재 볼륨조절기능은 물론 듣는 주파수까지 조절 가능한 전자 청진기까지 개발 되었으나, 정작 의료도구로서 청진기의 효용은 점점 떨어지고 있으니 청진기 입장에서는 세월이 야속할 듯 합니다.

 

양이삭 수의사(yes97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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