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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지의 묘생묘사] 크리스마스이브의 초대하지 않은 손님들

 

[노트펫] 먼저 고양이 화장실 세 개를 깨끗하게 치우고, 밥그릇에 사료와 물을 충분히 놓고, 혹시 모르니 큰 대접에 물그릇 하나를 더 만들어 놓는다.

 

집안을 휘 둘러보고 혹시 잘못 먹거나 떨어뜨려 다칠 만한 물건이 없는지 확인하면 1박 2일의 여행 준비가 대충 끝난다.

 

올해 크리스마스에는 미리 예약해 둔 펜션에 가기로 했다. 이럴 땐 제이와 아리가 고양이가 아니라 강아지였으면 함께 갔을 텐데, 하고 다소 아쉽다.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눈이라도 쏟아질 듯 하늘이 흐리더니 결국은 비가 내렸다. 스파에서 물놀이를 하고 펜션에 도착했을 때쯤엔 다행히 비가 그쳤지만 엄청나게 배가 고팠다.

 

아직 6시도 채 안 되었지만 바로 바비큐를 하기로 하고, 방과 계단으로 연결되어 있는 1층 바비큐장에 내려갔다. 단독으로 쓸 수 있는 작고 아늑한 공간이었다.

 

 

남편과 나는 같이 자주 술을 마시는 편이라 이번에도 종류별 술병을 서너 개 들고 갔다. 밥을 거의 다 먹고 술도 좀 취하며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는데 갑자기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냐아아아앙.”

 

우리는 순간 눈을 마주쳤다. 이게 웬 아리 소리야? 혹시나 해서 바깥과 연결된 바비큐장 문을 빼꼼 열어보자 고양이 두 마리가 문에 바싹 달라붙어 있었다.

 

여기서 맛있는 걸 먹고 있는 걸 다 안다는 듯 문틈으로 ‘냐아옹’ 울며 문 좀 열어 보라고 요청한 것이다. 문이 열리자 그중 한 마리가 냉큼 안으로 들어왔다. 불이 있어 안쪽이 아무래도 따뜻할 것이다.

 

차에 길고양이용으로 들고 다니던 캔이 하나 있어서 빈 접시에 엎어주자 치즈고양이가 허겁지겁 먹었다.

 

선뜻 들어오지 않고 문 앞에서 지켜보고 있던 다른 카오스 고양이에게 조금 덜어주었지만 이내 도망가 버렸다.

 

대신 캔을 먹고 있는 치즈고양이와 꼭 닮은 다른 치즈 아이가 바비큐장으로 쏙 들어왔다.

 

 

고양이들은 배가 고팠는지 캔 하나를 순식간에 다 먹어치웠다. 하나 더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미안한 마음에 방에 올라가 소시지를 조금 가져왔다. 배고픈 것보다는 낫겠지 싶어서였다.

 

돌아와 보니 내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내 의자와 빈 의자에 고양이가 한 마리씩 올라 앉아 있었다.

 

마치 손님처럼 의자 하나를 차지하고 태연히 앉아 있는 모습에 어이없는 웃음이 나왔다. 정말이지 고양이들이란…….

 

하지만 소시지는 취향이 아닌지 아니면 배가 좀 찼는지, 둘 다 냄새만 좀 맡고 고개를 돌렸다.

 

펜션 근처에서 늘 손님들에게 친한 척을 하는 녀석들인지, 고양이들은 의자에서 식탁에 뭐가 있는지 탐색하더니 급기야 내 무릎 위로 올라왔다.

 

 

오늘 처음 보는 사이에 경계심이 없는 것은 둘째 치고, 먹을 것보다는 온기를 찾는 것 같아서 마음이 좀 짠했다. 한숨 자고 갈 기세라 그대로 한참을 앉아 있다가 결국 화장실에 가고 싶어서 고양이들을 내려놓았다.

 

잠깐이지만 무릎의 온기와 캔 한 접시가 그나마 도움이 좀 되었을까? 길고양이들에게는 더욱 길 수밖에 없는 겨울이다.

 

저녁 식사 때 따뜻한 불이 피워진 바비큐장 안으로 선뜻 문을 열어주는 손님들이나마 자주 있다면 좋을 텐데.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늘 보고 들은 것보다는 뜻밖의 만남이다.

 

나도 아마 이 여행을 기억할 땐 초대하지 않았던 이브의 손님들이 제일 먼저 떠오를 것 같다.

 

박은지 칼럼니스트(sogon_abou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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