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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와 그 친척들] 스피츠와 고양이, 그리고 병아리의 관계

[노트펫] 절대빈곤이 타파되고,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추진되던 1970년대, 그동안 보기 힘들었던 외국 혈통의 강아지들을 마당에서 키우는 가정들이 늘어나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순백의 아름다운 외모를 한 재패니즈 스피츠(Japanese Spitz, 이하 :스피츠)가 크게 유행한 적이 있었다.

 

스피츠는 경계심이 많은 개로 집을 지키는 번견(番犬)에 적합한 개다. 필자의 집을 지켰던 스피츠견 빠루도 그랬다. 하지만 빠루는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어서 주인이 한눈을 팔면 크고 작은 사고를 곧잘 치기도 했다. 그래서 늘 유심히 살펴보아야 했다.

 

1970년대만 해도 국민학교로 불리던 초등학교 앞에서 병아리, 물고기, 개구리 같은 살아있는 동물들을 판매하는 행위가 흔했다. 지금 같으면 학교 앞에서 동물들을 팔다가는 당장 단속이 되겠지만, 당시는 동물권(動物權)이나 동물보호에 대한 개념이 형성되지 못한 시기여서 그런 풍경은 일상에 가까울 정도로 흔했다.

 

아이들은 특히 밝은 노란색의 병아리에 열광했다. 그래서 학교 앞에서 병아리를 팔기라도 하면 아이들은 주머니 속이나 신발주머니에 꼭꼭 숨겨두었던 동전을 아낌없이 꺼내 병아리를 사기도 했다. 필자도 그런 학생에 속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하굣길에 만난 병아리들이 너무 귀여워서 무려 열 마리나 되는 병아리를 사서 집에 왔다. 막상 집에 도착하니 이 병아리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눈앞이 막막해졌다. 할 수없이 마당 구석에 병아리들을 풀어 놓았다.

 

하지만 그런 행동은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일으켰다. 마당에서 놀던 빠루를 흥분시켰기 때문이다. 빠루는 느닷없이 벌어진 작은 축제에 열광했다. 번개 같이 날아와서 병아리 한 마리를 물고는 자기 집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빠루에게 고함을 치고 병아리를 내놓으라고 했지만, 빠루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손자의 고함소리에 놀라서 마당에 뛰어나온 할아버지는 불의의 사고가 재발되지 않도록 간이 닭장을 만들어주셨다. 병아리들에게 마당에서의 자유는 더 이상 주어지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병아리들을 모두 닭장에 넣고 빠루의 습격을 피하게 해주셨다. 그 결과, 첫날 잃은 병아리 한 마리를 제외하고 나머지 모두는 닭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은 호시탐탐 병아리들을 노리던 빠루와는 달리 영리한 고양이 나비는 주인이 애지중지하는 병아리들을 해칠 생각이나 행동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런 것을 보면 나비는 고양이의 모습을 한 사람과도 같아보였다. 자신이 어떤 일을 하면 주인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지를 완벽하게 알았기 때문이다.

 

나비는 개와 사이가 좋지 않은 다른 집 고양이와는 달리 빠루와 친했다. 단 한 번도 빠루와 싸운 적이 없었고, 서로 밥과 물을 나눠 먹고 마실 정도로 가까웠다. 이 두 마리에게는 견묘지간(犬猫之間)이라는 옛말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두 동물이 싸우지 않은 것은 나비가 본능에 충실한 빠루를 위해 남다른 배려와 인내를 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나비는 주인이 빠루를 사랑해서 빠루와 자신이 싸우면 싫어한다는 점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지나친 의인화(擬人化)일 수도 있다.

 

이강원 동물 칼럼니스트(powerranger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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