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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지의 묘생묘사] 고양이는 알 수 없는 자리를 좋아한다

 

[노트펫] 날씨가 너무 더워서 고양이들도 녹아내리고 있다. 기분 탓인지 평소보다 더 축축 늘어진 자세로 각자 더위를 견디고 있는 것 같다.

 

워낙 날이 뜨겁다 보니 집을 비울 때도 에어컨을 틀어두고 다니는데, 그래도 가끔은 고양이들이 더위에 숨을 헐떡이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서 요즘은 더 유심히 아이들을 관찰한다.

 

고양이들이 누워 있는 곳을 살펴보면 각자 유독 좋아하는 자리가 있다.

 

집에서 종일 고양이들을 보고 있으면 각자의 취향과 패턴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움푹한 자리를 좋아하는지, 평평한 바닥을 좋아하는지, 혹은 늘 집사가 있는 자리를 따라 다니는지.

 

더위를 많이 타는 것처럼 보이는 아리는 요즘엔 주로 에어컨을 직접 쐴 수 있는 자리에 누워 있다.

 

 

에어컨 바로 앞의 하우스나 우드슬랩테이블의 의자에 누워 있는 걸 보면 내 생각에는 집에서 가장 시원한 자리를 귀신 같이 아는 것 같다. 아이스팩이 들어 있는 쿨매트를 가장 오래 차지하고 있는 것도 아리다.

 

날씨와 상관없이 달이가 좋아하는 자리는 대체로 해먹이다. 해먹을 사용하는 건 달이뿐이라서인지 달이는 그곳을 자신만의 영역이라 여기는 것 같다.

 

 

약을 먹는 게 싫어서 도망갈 때도 느릿느릿하게 해먹 위로 올라가는 탓에 금방 잡히고 만다.

 

오픈된 공간인데도 거기가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건지, 고양이의 머릿속은 참 알 수가 없다. 달이 무게 때문에 해먹의 천은 점점 아래로 늘어지고 있는데, 가능한 한 오래 버텨주길 바랄 뿐이다.

 

달이가 해먹에 올라가 있지 않다면 보통 냉장고 위에서 발견할 수 있다.

 

우리 집은 계단형 책장을 통해 냉장고 위로 가볍게 올라갈 수 있는데, 달이는 부엌에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그 위로 올라와 먹을 게 있는지 지켜본다.

 

가끔은 그 위에서 앞발 두 개를 걸친 채 꾸벅꾸벅 조는 모습이 아주 귀엽다.

 

문제는 삼색고양이 제이다. 제이는 거실보다 안방에 있는 시간이 많고, 안방보다는 창밖을 볼 수 있는 베란다 캣타워에 누워 있는 것을 좋아한다.

 

녹아내릴 정도로 더운 날씨인데도 굳이 에어컨 켜진 거실이 아니라 베란다에 나가서, 쿨매트도 아니고 캣타워 해먹에 누워 있는 심리는 도대체 뭘까.

 

내 입장에서는 보기만 해도 푹푹 찌는데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얼마 전에는 저녁 무렵에 길을 걷고 있다가 한 과일 가게 앞에 고등어 고양이가 한 마리 누워 있는 걸 봤다.

 

 

과일을 진열할 수 있게 해둔 것 같은 낮은 매대 위에 올라가 있는 것이었는데, 그 뒤쪽으로 시선을 돌렸다가 깜짝 놀랐다. 똑같은 매대 세 개에 똑같은 고양이가 한 마리씩 올라가 있는 게 보였다.

 

고양이 세 마리가 똑같은 자리를 하나씩 차지하고 도플갱어처럼 올라 앉아 있는 것이었다. 이 자리가 좋은 자리라고 서로 정보 공유라도 하는 걸까?

 

거짓말 같은 풍경에 당황하며 사진을 여러 장 찍는 동안에도 고양이들은 태연한 표정으로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어쩜 고양이들은 그렇게 웃기고 귀여운 짓을 하는 건지.

 

마음 같아서는 마당 있는 넓은 집에 살면서 고양이가 좋아할 만한 장소를 수십 개쯤 구비해 놓고 싶다.

 

다만 한 길 물 속은 알아도 열 길 고양이 속은 모를 그들의 취향을 내가 제대로 헤아릴 수나 있을지는 모를 일이겠다.

 

 

박은지 칼럼니스트(sogon_abou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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