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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지의 묘생묘사] 작은 괴로움으로 큰 고통을 피하자, 고양이 양치질

[노트펫] 나는 어릴 적부터 아무리 귀찮아도, 여행을 갔는데 칫솔이 없어도, 심지어 필름이 끊길 만큼 술을 마셔도 양치질을 빼먹고 자는 법은 거의 없었다.

 

양치질 애호가라서가 아니라 그만큼 치과가 무서웠기 때문에 그나마 할 수 있는 건 양치질뿐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워낙에 겁이 많은 성격이기도 하지만, 특히나 치과의 이미지를 떠올리면 특유의 소독약 냄새에 괴기스러운 소리까지, 상상만 해도 공포스러웠다.

 

그 덕분인지 지금까지 치아에 큰 문제는 없지만, 처음으로 어쩔 수 없이 사랑니를 빼러 갔을 때는 마취밖에 안 했는데 지레 겁에 질려 펑펑 우는 바람에 이를 빼는 동안 간호사 선생님이 내 손을 꼭 잡아 주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부끄럽지만 그땐 얼마나 서럽게 울었는지, 1년이 지나서 다른 쪽 사랑니를 빼러 갔는데 아직도 선생님들이 나를 기억하고 계셨다.

 

사실 치아 관리가 중요한 건 사람뿐 아니라 반려동물도 마찬가지다. 아니, 강아지나 고양이는 오히려 훨씬 중요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람은 잇몸만 마취해서 치료를 하지만, 동물들은 구강 치료를 할 때 전신마취를 한 뒤 진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평소 심장이 약하거나 혹은 나이가 많아질수록 치과 치료를 위해선 몸에 무리가 갈 수밖에 없는 셈이다.


그러니 반려동물도 어릴 때부터 미리미리 양치질을 해두어야 한다. 나도 처음에는 엄두가 잘 나지 않았다. 양치질이라는 지극히 인간스러운 행위를 이 작은 동물들에게 도대체 어떻게 납득시킬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이빨에 치석이 생기다 보면 이후에 치주염, 치은염 등 구강 염증이나 다른 질병까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치과가 무섭다면 양치질은 예방의 기본인 셈이다. 먼저 입 근처를 살살 만져주는 것부터 시작했다.


발톱을 깎을 때도 자주 앞발을 살살 만져주다 보면 익숙해지는 것처럼, 양치질도 처음부터 너무 욕심을 부리기보다 입 부근을 손가락으로 어루만지는 것부터 시작해보는 것이 좋다. 

 

그러다 어느 정도 가능하리라는 판단이 들면 부드러운 고양이용 칫솔로 살살 문질러 닦아준다. 칫솔질이 무리라면 잇몸에 손으로 바를 수 있는 치약도 있고, 간식 맛이 나는 치약도 있으니 가능한 방법에 맞추어 고르면 된다.

 

사실 크고 잘 보이는 송곳니는 비교적 쉬운데 안쪽의 어금니 부분이 어렵다. 입 안에 뭘 집어넣으니 당연히 싫어하고 이물감을 느끼는 듯 자꾸 입을 다물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쪽에 치석이 끼기 쉬우니 빠뜨리지 말고 닦아주어야 한다. 나도 처음에는 송곳니 위주로 하다가 점점 안쪽으로 들어가 닦아주었는데 지금은 어금니도 잘 닦는다. 칫솔에 음식 찌꺼기들이 묻어져 나오면 나름대로 뿌듯하기도 하다.

 
어릴 때부터 키웠던 제이는 그나마 쉬웠지만, 성묘로 길고양이 생활을 하다가 입양한 아리는 입 쪽을 만지면 너무 싫어했다. 

 

내 무릎이나 배 위에 올라와서 그릉거릴 때마다 은근슬쩍 만지다 보니 이제 맨손으로 만지는 건 그럭저럭 가능해졌지만 무언가 도구를 사용할 태세가 보이면 재빨리 도망을 간다.

 

그 탓에 아리는 아직 칫솔은 쓰지 못하고, 치약을 먹는 단계부터 손가락으로 발라주는 단계까지 차근차근 진행 중이다(당연한 얘기지만 고양이용 치약은 먹어도 된다. 물론 사람 치약은 쓰면 안 된다).

 

양치질할 때마다 실랑이를 하는 게 꼭 어린 아이 키우는 것 같다. ‘지금부터 양치질이야’라는 식으로 다가가면 눈치채고 어디로 쏙 들어가 버리기 때문에, ‘난 그냥 지나가는 중’인 척하며 손에 칫솔을 숨기고 걷다가 냉큼 붙잡고 양치질을 시켜야 한다.

 

그래도 지금의 고생 덕에 가능한 치과를 멀리하고 살 수 있길 바랄 뿐이다. 너희가 몰라서 그러는데, 치과는 정말 무섭다고.

 

박은지 칼럼니스트(sogon_abou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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