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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 속 냥이와 멍이] 미술사의 역사적 장면을 함께 한 멍이

아래 그림은 내델란드 화가 얀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입니다. 언제 그려진 그림일까요?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 오크 화판에 유화 60.0cm x 82.2cm 런던 내셔널 갤러리, 위키피디아

 

이 그림이 그려진 시점을 알고 깜작 놀랐기 때문에 드리는 질문입니다. 질문을 단순화하겠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등 르네상스시대의 거장들보다 선배일까요, 후배일까요? 르네상스의 본고장인 이탈리아가 아닌 북유럽 화가입니다.

 

충성과 정절, 애정의 상징인 멍이가 고맙게도 이 그림에 등장합니다. 멍이는 부부의 결혼(또는 약혼)에 입회했습니다. 멍이는 유럽미술사의 혁신적 변화를 대표하는 그림에 함께 하는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덕분에 우리도 이 그림을 찬찬히 뜯어볼 기회를 가졌습니다.

 

다빈치는 최후의 만찬(밀라노 산타마리아 델레 그레치아 수도원)을 1495-98년에 그렸습니다. 모나리자(루브르박물관)은 1502년경에 그렸습니다. 미켈란젤로는 천지창조(바티칸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를 1508-1512 년에 그립니다. 최후의 심판은 그 뒤 30년이 지나 완성합니다.

 

눈치 빠르신 분들은 답을 짐작하실 겁니다. 얀 반 에이크는 이들 보다 한참 선배입니다.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은 1434년 작품입니다. 반 에이크는 르네상스를 꽃피운 거장들에게, 원근법이란 밑돌을 놓아준 선배화가 마사초(이탈리아 피렌체)와 비슷한 시기에 활약했습니다.

 

6월 8일부터 22일까지지 런던으로 들어가 파리, 베네치아, 피렌체, 로마의 주요 박물관과 미술관을 탐험했습니다. 검색과 서적을 통해 그림을 보고 글을 쓰기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현장감 있는 글을 쓰기 위한 여행이었습니다. 런던 내셔날 갤러리에서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을 감상했습니다. 피렌체 산타마리아 노벨라 교회를 찾아가 마사초의 '성삼위 일체'를 봤습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마사초의 그림은 조금은 촌스러운 잘 그린 그림으로 느꼈습니다. 그러나 부부의 초상은 모던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일반인(제 수준이 일반인입니다)의 시각으로 봤을 때 촌스럽지도 않고 손으로 그린 자세한 묘사가 신기했습니다. 그러나 미술사적으로 마사초의 그림은 원근법과 단축법을 이용해 평면에 삼차원의 공간감을 제대로 느끼게 한, 르네상스 회화를 꽃피게 한 최초의 그림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런 사전지식을 가지고 입체감이 없는 다른 종교화와 비교해 보니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갔습니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전하는 사진을 늘 보며 다양한 기법의 그림에 익숙한 현대인에게는, 사전지식이 없다면 마사초의 그림은 ‘그렇고 그런’ 그림일 뿐입니다. 그러나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공간감을 느끼게 하는 그림은 ‘충격 그 자체’인 혁신적인 변화였습니다.

 

우리의 느낌을 잠시 접어두면, 두 그림은 시대정신을 다른 방법으로 반영한 원조입니다. 당시의 시대정신은 종교로부터의 해방과, 있는 그대로의 현실의 재현입니다. 현실 그대로 사실적인 모습을 그리고, 소재도 종교적 소재뿐 아니라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표현하는 쪽으로 확대됩니다.

 

이탈리아의 화가들은 원근법 등 과학을 통해 3차원공간을 그대로 2차원에 평면에 옮기는 방법으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반면에 북유럽 화가들은 아주 세밀한 묘사를 통해 삶의 현장을 통째로 떠서 화폭에 옮겼습니다.

 

얀 반 에이크가 대표화가이고,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이 대표작입니다. 고민의 공통점은 현실을 어떻게 그림으로 그대로 옮기냐입니다.

 

이 그림 별로 크지 않습니다. 공식적으로 설명하는 규격(60.0cm x 82.2cm)보다 더 작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 오만 것들이 들어있습니다. 가깝게 붙어 자세히 보려다 경비하는 분의 제재를 받았습니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모나리자'가 있다면, 런던 내셔날 갤러리의 대표적 소장품이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이니 이해해야죠.

 

조명이 있지만 세세한 부분이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혹시나 어두운 곳에서 잘 보이지 않는 야맹증이 조금이라도 있는 분은 비타민A를 사전에 섭취하면 좋을 듯합니다.

 

저도 눈은 좋다고 자신했는데 실내에서 잘 보이지 않고 카메라 초점도 뿌옇게 나와 당황했습니다. 그래도 확인해야 할 부분은 확인했습니다.

 

 

 

여러분이 사랑하는 멍이부터 보시죠. 눈빛이 반짝거리고, 털도 곱게 다듬어 내렸습니다. 당당하게 서서 쳐다보는 눈빛이 마치 바로 앞에 서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중세의 그림들은 종교의 교훈을 전달하기 위해 사물을 대락적으로 묘사했습니다.

 

그러나 이 그림은 소재는 부유한 시민(상인)의 삶에서 가져오고, 그 삶의 모습을 아주 세밀하게 그렸습니다. 멍이는 상상속의 동물이 아닌 실제 모델이었을 겁니다. 세심하게 관찰한 6백년전 멍이의 초상화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림에서 거울부문입니다. 자세히 보면 두 사람 뒤에 거울에 비친 두 사람이 더 있습니다. 결혼(약혼) 공증인과 증인인 화가 본인입니다. 이렇게 그림속의 거울을 통해 화가의 모습을 다시 그려 넣는 기법은 이후에 여러 유명 화가들이 다시 사용합니다.

 

거울에 비친 창문의 모습이 정면에서 본 모습과 다릅니다. 두 사람의 뒷모습을 포함해 사실적으로 장면을 묘사하기 위해 실제로 거울에 비친 모습을 그려 넣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거울주변에 10개의 아주 작은 원형 거울이 있습니다. 꼭대기에 십자가에 못 박히는 예수를 포함해 예수님의 고난을 자세히 그려 넣었습니다.

 

본 그림을 보면 거울 바로 위에 ‘Johannes de eyck fuit hic 1434(반 에이크 입회했노라 1434년)’이라고 쓰여져 있습니다. 장인으로 길드에 속해서 개인의 이름을 남기지 못하던 화가들이 이름을 남기기 시작하고, 독자적으로 예술가로 인정받기 시작하는 증거죠.

 

또 다양한 상징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샹들리에에 켜있는 촛불은 예수그리스도가 이들의 결혼식에 함께 있다는 의미입니다. 창틀에 있는 사과는 원죄를 뜻합니다.

 

촛불과 사과가 함께 있는 것은 원죄에도 불고하고 부부가 새로 태어난다는 의미겠죠. 침대 뒤 신부 머리 쪽의 목상은 다산을 기원하는 여성들의 수호성녀인 마가리타 성녀입니다.

 

마사초 성삼위일체 1425-1428년 프레스코 667cm x 317cm 피렌체 산타마리아 노벨라 교회

 

세밀한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기술의 혁신이 필요합니다. 이 그림은 유화입니다. 이전까지 그림을 그릴 때 물감은 계란에 반죽한 템페라 화입니다. 템페라는 색깔이 서로 섞여 미세한 변화를 그리기에는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얀 반 에이크는 물감을 섞는 용매로 계란대신 기름을 사용해 세밀한 묘사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물감재료의 혁신이 진보를 가능하게 한 것이지요. 그는 유화의 발명자, 적어도 유화를 대중화시킨 확산자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얀 반 에이크와 같은 시대를 산 마사초의 그림을 한번 보시죠. 방법은 다르지만, 현실을 있는 그대로 화폭에 재현하려한 두 거장의 노력을 생각하면서 두 그림을 보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다음에는 우리 생활 속으로 깊이 파고든 고양이와 함께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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