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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양이 에세이] 잠결의 환영

 

길을 향해 탁 트여 있는 방콕의 한 카페였다. 뜨거운 햇빛의 열기를 피하기 위해 어디라도 지붕이 있는 곳에 들어가는 것이 우선이었다. 여행자들이 인터넷을 쓰기 위해 많이 오는 곳이라더니, 현지인들도 보이고 아예 노트북을 켜고 앉아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는 이들도 있다.

 

휘 둘러보다가 난 종종 가게 카운터 앞에서 손님들이 “꺅, 이거 진짜인 줄 알았어!” 하고 즐거운 비명을 지르게 만드는 고양이 인형을 떠올렸다. 입구 방석 하나를 차지하고 고양이가 새근새근 자고 있었던 탓이다.

 

옆 방석에는 손님이 앉아 있었다. 내심 그 테이블이 비지 않을까 싶어 머뭇거리다가, 포기하고 안쪽에 들어가 낯선 메뉴판을 받아들었다.

 

그린 커리와 그래놀라가 들어간 요거트 같은 것을 주문하고 간신히 더위에서 벗어나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워낙 더운 지역이라 만족스럽게 시원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선풍기 바람이 돌아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오후 일정을 짜고 교통편을 체크하며, 곁눈질로 자고 있는 고양이를 지켜보는데 절대로 깨어나지를 않는다. 입구 쪽이라 사람들도 왔다 갔다 지나다니고, 테이블 옆이니 식사 소리도 어수선할 텐데 끄떡없다.

 

 

물론 사람들 쪽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가게 주인은 물론이고 손님들도,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 분위기다.

 

요즘은 가게 안에서 고양이를 키우는 일이 제법 있는 것 같다. 그런 곳은 보통 고양이가 가게의 마스코트처럼 여겨지는 분위기인데, 여기는 아예 있든지 말든지 하는 장식품 수준이다.

 

거참, 마음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양이를 보고 깜짝 놀라며 기뻐하는 손님들에게 예쁨 받는 것도 꽤 좋겠지만, 담담한 생활의 일부가 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일 테니까.

 

향신료 때문인지 아무래도 입에 맞지 않는 커리에서 콜리플라워와 당근 몇 조각을 애써 건져 먹고 슬슬 다시 더위 속으로 나갈 채비를 한다. 고양이도 그만 일어나서, 나와의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에 눈인사라도 나눠주었으면 좋겠는데 역시 나갈 때까지 그 자세 그대로다.

 

그래, 나도 호들갑 떨지 말고 태연하게 지나쳐야지. 고양이가 있는 풍경이 그저 늘 있는 일상인 것처럼. 하지만 미련을 떨치지 못하고 고양이를 스치며 슬그머니 꿈속으로 나의 기원을 쏘아 보냈다. 꿈결에는 나의 방문을 환영해 주었길.

 

박은지 <흔들리지마 내일도 이 길은 그대로니까>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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