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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작은 섬에서 만난 고양이 카페

 

[박은지 객원기자] 태어나서 처음 해외여행을 갔던 곳이 바로 홍콩이었다.

 

대학생이었던 나와 친구는 짧은 3박 4일 일정 동안 홍콩의 주요 관광지를 다 돌아보고 싶어 분 단위로 빽빽한 스케줄을 짰다.

 

어디를 돌아봐도 낯선 언어와 낯선 거리의 풍경이 마냥 신기하고 이국적으로 느껴졌다.

 

그렇게 철저히 준비하고 간 여행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고, 그 덕분인지 피곤하긴 했지만 첫 여행인데도 오랫동안 많은 것들이 기억에 남았다.

 

 

거의 7년 만에 다시 가게 된 홍콩은, 나에게는 새롭고 화려하기보다 반갑고 궁금한 도시가 되어 있었다.

 

예전에 봤던 관광지를 다시 보는 것보다, 이번엔 조용하고 일상적인 홍콩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

 

란콰이 섬에 있는 타이오 마을에 가기로 결정하고 구불구불 긴 산길을 따라 가는 버스를 탔다.

 

타이오 마을에 가려면 공항에서 20분 걸리는 통촌역으로 가서, 거기서 다시 버스를 타고 한 시간 정도를 들어가야 한다.

 

정말 이렇게까지 시골로 가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산길을 따라 달리다 보면 스르르 잠이 쏟아지지만 다행히 타이오 마을은 종점이다.

 

 

이 어촌 마을은 원래 분홍 돌고래를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보트를 타고 20여 분 정도를 나가면 운이 좋은 날 분홍 돌고래를 발견하기도 한다는데, 최근에는 보트가 너무 자주 뜨는 탓인지 돌고래가 좀처럼 가까이 오지 않는 모양이다.

 

대신 담벼락에 분홍 돌고래 벽화가 커다랗게 그려져 있다.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마을이라서, 시장에서는 생선과 건어물을 가득 올려놓고 팔고 있고, 시장을 살짝 벗어난 주택가는 고요했다.

 

시장 길가에서 꾸벅꾸벅 앉은 채 졸고 있는 고양이 한 마리를 지나 슈퍼마켓처럼 보이는 작은 가게에 들어섰다.

 

특별히 살 건 없더라도 홍콩은 버스에서 현금을 내면 거스름돈을 주지 않아 잔돈을 만들어놓는 것이 필수다.

 

가게의 비닐 천막 안쪽에는 고양이 두 마리가 잠들어 있었다.

 

맥주를 고르며 내가 슬쩍 쳐다봤더니 한 고양이가 내 시선을 느꼈는지 갑자기 눈을 뜨곤 그루밍을 하기 시작했다.

 

"어머, 나한테 잘 보이려고 하는 건 아니겠지?"

 

 

가게를 보던 건 열네다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녀였는데, 쭈그리고 앉아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던 소녀는 내가 맥주 캔을 꺼내 들자 수줍게 ‘나인’ 했다.

 

9달러를 내고, 고양이들을 가리키며 ‘유어 캣?’ 했더니 또 수줍게 끄덕, 한다.

 

 

골목에 오가는 사람은 많지 않았고, 잠들어 있던 고양이들은 내가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도 세상에서 제일 평화로운 자세를 고수했다.

 

나는 고양이가 발라당 뒤집어져 누워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이 좋다. 아무도 나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거라는 믿음, 이곳은 세상 어느 곳보다 안전하다는 태평함 같은 것이 어우러져 있기 때문에.

 

그리고 나 또한, 고양이를 안심시키는 평화로운 존재가 되는 듯하기 때문이다.

 

 

걷다 보면 화려한 담벼락에 언뜻 봐도 눈에 띄는 카페가 보이는데, 언어를 몰라도 고양이가 그려진 간판 그림에서 벌써 짐작할 수 있는 고양이 카페였다.

 

타이오 마을에는 카페가 딱 두 개 있는데 그중 하나가 이 고양이 카페라고 한다.

 

고양이 엽서부터 그림, 액세서리, 피규어 등을 팔고 있을 뿐 아니라 가게 내부와 마당에서 고양이들이 지내고 있었다.

 

평일이라 그런지 손님은 없어도 고양이를 위한 해먹이나 캣타워는 많았다. 가게 사장님은 근처의 길고양이들도 돌보는 모양이었다.

 

 

홍콩에서 만난 고양이 카페가 반가웠다. 말은 통하지 않아도 동물에 대한 마음은 통하고, 고양이들은 어느 나라에서건 남에겐 별 관심이 없다.

 

메뉴판에 'cat toast'가 있어 고양이가 먹는 것인지 사람이 먹는 것인지 물었더니 사람 음식이란다.

 

고양이 모양으로 컷팅된 토스트를 포장해 다시 버스를 타고 구불구불한 길을 건넜다.

 

날씨가 꾸물꾸물하더니 버스에 타자마자 세찬 비가 쏟아져, 빗소리를 들으며 공항에 도착할 때까지 다시 꾸벅 잠이 들었다.

 

타이오 마을은 화려한 홍콩과는 거리가 먼 한적하고 조용한 동네다.

 

 

그리고 고양이들은 원래 그 길의 일부이기 때문에, 골목의 풍경에 자연스럽게 섞여 있다.

 

홍콩에 간다면 네모반듯하게 빚어진 멋진 도심도 좋지만, 길고양이가 사는 있는 그대로의 골목길을 걷는 것도 좋겠다.

 

일상을 새삼스레 엿보는 것도 여행지에서만 가능한 특별한 경험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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