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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지의 묘생묘사] 너는 과거 있는 고양이 ⓵

"예전에는 과거가 별로 없는 남자를 만나고 싶었는데, 요즘에는 연애 많이 해본 남자가 더 좋아."

 

친구의 말에 나도 공감했다.

 

남산 데이트도, 바다 여행도, 낯선 아보카도를 먹어보는 일도 다 나와 함께 하는 게 처음인 남자와 연애하는 건 물론 풋풋하고 설레긴 하지만 어딘가 좀 피곤하다.

 

삐쳐서 말하는 '오늘은 안 만날래, 피곤해'를 곧이곧대로 듣거나, 나를 앞에 두고 자신의 관심사인 게임에 대한 이야기만 늘어놓거나,

 

한 달에 한 번쯤 예민한 날이 있다는 걸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남자에게 여자의 마음을 일일이 브리핑하는 건 때로 답답하고 자주 서운하다.

 

더 문제는, 그렇게 연애 초심자를 만나 연애 중급자 정도로 레벨 업을 시켜두면 그 남자는 나랑 헤어져서 다른 여자에게 연애 스킬을 써먹는다는 점…

 

아무튼 (신랑이 보고 있으니) 이 얘기는 이쯤 하고, 나이를 먹을수록 연애에 능숙한 남자에게 더 끌리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또 나 자신도, 연애를 해볼수록 나 스스로가 어떤 타입이며 어떤 성향의 남자에게 매력을 느끼는지 더 잘 알 수 있게 된다.

 

나의 다음 연애는 항상 이전의 연애를 기반으로 해 성장했더랬다. 이런 사람은 만나지 말아야지, 혹은 다음엔 이렇게 행동하지 말아야지, 하고.

 

과거의 연애를 기반으로 서로가 어떤 사람인지, 나와 궁합이 얼마나 잘 맞을지 비교적 잘 유추해볼 수 있는 것처럼 성묘를 입양하는 것도 비슷한 면모가 있다.

 

아기 고양이는 물론 성묘에 비해 훨씬 인기가 많고 입양도 쉽게 되는 편이다.

 

어떻게 자랄지 모르는 어린 고양이와의 동거는 매일매일 새롭고 매력적일 뿐 아니라 무엇보다 귀엽고, 귀엽고, 또 귀엽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제공하는 환경과 교육관(?)이 그만큼 중요하며,

 

대개의 경우 어릴 때 본능으로 인해 필수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는 물고, 뛰고, 할퀴는 과정을 견뎌야 한다.

 

 

반면 성묘는 나와 잘 맞는 성격인지, 어떤 성향을 가지고 있는지, 다 크면 어떤 얼굴이 되는지를 다 파악할 수 있어 오히려 궁합이 잘 맞는 묘연을 만나면 서로 적응하기 쉬울 수도 있다.

 

다만 어린 고양이보다 덜 귀엽다는 점, 이미 다른 환경에 적응해 있어서 새로운 집에서 잘 지낼지(혹은 기존에 키우고 있던 반려동물과 잘 어울릴 수 있을지) 우려된다는 점 때문에 입양 가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우리 집 첫째 고양이 제이는 약 4개월령에 만났다.

 

아기 고양이가 커가는 것을 지켜보는 건 하루하루가 놀랍고 신비스러운 것인 동시에, 나 같은 초보 엄마(?)에게는 흰 도화지에 선을 긋는 듯한 조심스러움도 있었다.

 

제이 이후로는 언젠가 둘째를 키우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지는 않고 있었다.

 

동물을 키운다는 게 선뜻 결정할 수 있는 쉬운 일은 아니니, 내가 키우게 될 고양이라면 어느 순간엔가 나에게 보다 명확한 텔레파시(일명 간택)를 보낼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도 있었다.

 

그러다 하루는 신랑이 카톡으로 사진을 한 장 보내왔다. 내가 기다리던 묘연의 고양이는 내가 아니라 신랑에게 먼저 텔레파시를 보낸 모양이었다.

 

 

사진 속 고양이는 다 큰 성묘였다. 입양처를 기다리고 있는 그 사진 속 회색 길고양이는 우리가 흔히 길에서 보는 코리안 숏헤어(코숏)가 아니라 일명 품종묘였다.

 

틀림없이 원래는 가족이 있었던, 집을 나왔거나 어떤 이유에선가 버려진 유기묘라는 뜻이었다.

 

뜻밖의 길 생활을 이미 6개월 정도 하고 있던 아이로, 가게에서 밥을 주며 돌보던 캣맘이 집고양이로 돌아가길 바라는 마음에 입양 공고를 올린 것이었다.

 

사실 신랑(당시 남자친구)은 원래 동물을 키워야 한다면 어릴 때부터 키우고 싶다고 했다.

 

그래야 '내 고양이', '내 강아지'라는 생각이 들 것 같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상형대로 연인을 만나는 건 아니듯 묘연도 그렇다.

 

신랑은 아기고양이가 아닐뿐더러 아기를 낳아도 이상하지 않을 다 큰 길고양이에게 벌써 푹 빠져 있었다.

 

한 발자국 다가가면 두 걸음 멀어지며 경계하면서도, 자신이 마음을 연 사람에게는 마음껏 스킨십을 허용하는 아이였다.

 

둘째까지 들여 잘 키울 수 있을까 고민했던 시간이 무색하게, 사진 몇 장만 보고 우리는 이 고양이를 입양하기로 결정했다.

 

길게 고민하는 동안에, 당장 내일을 알 수 없는 길 생활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 줄 모르는 노릇이라 결정은 더 빨랐다.

 

나 역시 처음 보는 순간 알아버린 것이다, 넌 나를 만나기 위해 나타났다는 걸.

 

 

캣맘과 몇 번의 연락 끝에 그 회색 고양이를 만나러 가기로 했다.

 

길고양이니 아무 때나 간다고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매일 밥 먹으러 가게에 오는 시간에 맞춰 가보기로 한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날 그 고양이를 데리고 돌아갈 수 없었다.

 

(‘너는 과거 있는 고양이 로 이어집니다)

 

박은지 칼럼니스트(sogon_abou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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