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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양이 에세이] 내게는 여행, 네게는 일상

바다가 있는 도시에 대해 기묘한 향수를 느낄 때가 있다.

 

바다가 있는 곳에서는 한 번도 살아본 적이 없는데, 도리어 그래서 생긴 애틋함일지도 모르겠다.

 

스무 살 처음으로 홀로 기차를 타고 다섯 시간가량을 달려 부산에 도착했을 때, 나는 벌써부터 이 낯선 도시가 성큼 마음에 들었다.

 

그 후로 부산에는 자주 왔다. 일상을 잠시 내버려두고 온 장소, 일단 파도 소리를 품은 공기가 나를 다독여 주었다.

 

감천문화마을은 관광지인 동시에 실제로 사람들이 살고 있는 동네다.

 

빨래가 널려 있고, 문 앞에 놓인 대야에 감자와 양파가 들어 있다.

 

길을 잘못 들어서면 다른 이들의 주거 공간을 방해하게 되기 때문에,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나있는 화살표 모양 지표를 잘 따라 걸어야 한다.

 

첫 번째 알록달록한 물고기 지표를 따라 들어서자마자 동네 고양이가 내 앞을 휙 날아 지나갔다.

 

 

수많은 이들이 오가는 데 이미 익숙할 동네 고양이는 잠시 나를 살피더니 사다리를 타고 미련 없이 올라가 버렸다.

 

일단 접수했으니 알아서 둘러보고 가라는 듯이. 어쩐지 내가 이방인이라는 기분보다, 그들의 영역 안으로 포개어졌다는 실감이 난다.

 

호들갑 떠는 걸 싫어하는 나로서는 그 동네 고양이들의 대수롭지 않은 태도를 보면 마음이 놓인다.

 

무엇을 해도 좋고, 무엇을 하지 않아도 좋다는 허락을 받는 것 같은 기분이랄까.

 

 

주변에서 과장되게 칭찬하거나 격려하면 오히려 마음이 무거워질 때가 있다.

 

대수롭지 않은 듯 행동하고, 태연한 척이라도 했을 때 태연해진다.

 

섣불리 초조해하지 않고 기다리면 긴장된 순간도 지나가기 마련이다.

 

무언가 이루어 내고 설명하기 위해 있는 힘껏 에너지를 짜내는 대신,

 

네가 무슨 생각으로 이곳을 찾았든 내 알 바 아니라는 길고양이의 무심한 눈빛을 받는 게 도리어 안심이 될 때가 있는 것이다.

 

침착하게 걸음을 내딛으며 귀 기울이니 동네는 고요했다. 고양이 발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박은지 <흔들리지마 내일도 이 길은 그대로니까>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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