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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지의 묘생묘사] 결혼과 아기와 고양이의 상관관계

내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알렸을 때 고모가 이불을 사주신다고 했다.

 

친척들과 자주 교류하는 편이 아니라서 친척 어른들이 어색한 탓에 몇 번 사양했지만, 꼭 이불을 골라주고 싶다고 하셔서 결국 감사한 마음으로 따라 나섰다.

 

고모가 강력 추천하는 이불이 있다며 보여주셨지만 아이보리색에 레이스 장식이 많아 솔직히 말하면 내 취향이랑은 좀 거리가 멀었다.

 

어떻게 어필해야 하나 머뭇거리다가, ‘이렇게 레이스가 많은 건 고양이들이 물어뜯을 수도 있어서요’ 했다.

 

반쯤은 레이스 이불이 취향이 아니라는 핑계였지만, 당시 두 마리 고양이들이 기운이 뻗쳐 매일 밤 격렬한 우다다를 해대는 시즌이라 발톱에 걸릴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고모가 '고양이 키우니?' 하고 화들짝 놀라시는 것이었다. 그러곤 얼른 한 마디 덧붙이셨다.

 

"아기 낳으면 고양이들은 다른 데 보내라!"

 

두둥, 당연히 그럴 수는 없지만 이 문장을 직접 듣게 된 것 자체가 적잖이 충격이었다.

 

그래도 고양이에 대한 인식이 예전과는 많이 달라지고,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도 훨씬 많아졌다고 생각했는데 고양이와 아기를 함께 키우는 일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어른들은 내 주변에도 얼마든지 있었던 것이다.

 

고양이에게 특별히 악의가 있거나 개인적인 앙금이 있어서 한 말씀은 물론 아니겠지만, 집에 있을 두 고양이들을 대변해서 속이 상했다.

 

 

어느 하루는 집에 공기청정기 캐디님이 방문했다.

 

사실 빠듯한 살림에 공기청정기까지 쓰는 건 좀 사치인 것 같다, 하고 결혼 초 고민하던 품목 중 하나였는데 그때 하필 털갈이 시기라 집안에 고양이털이 엄청나게 날렸다.

 

각종 먼지나 이물질에 예민하지 않은 나와 달리, 털 날리는 집안에서 생전 처음 살아보는 신랑의 주장에 따라 '고양이털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공기청정기를 추천받았던 것이다.

 

우리 집 고양이들은 어찌 된 영문인지 통 낯을 가리지 않아서, 새로운 사람이 집에 오자 숨기는커녕 두 마리가 공기청정기 근처로 모여들었다.

 

원활한 진행을 위해 고양이들을 낚싯대로 유인해 놀아주는 동안에 금방 점검이 끝났다.

 

그분은 슬쩍 고양이들을 보더니 붙임성 있는 말투로 물었다.

 

"고양이는 누가 좋아해서 키우는 거예요?"

 

"네? 뭐… 제가요."

 

"아이고, 아기 낳으면 어쩌려고요."

 

…….

 

괜찮아요, 잠시 말문이 막혔다가 이내 소극적으로 변명했지만 그분은 아기 생기면 고양이들이 샘을 내서 안 된다, 강아지랑 달라서 아기한테 문제가 된다, 하며 뜬금없는 고양이 음모론을 펼치며 돌아가셨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내 마음을 존중받고 싶은 것과 마찬가지로, 고양이를 싫어하거나 아기에게 피해를 준다고 생각하는 이들의 마음은 이해한다.

 

사실은 아주 간단한 얘기다.

 

동물을 좋아하지만 아기와 같은 공간에 두기는 찜찜하다고 생각하는 부부라면 동물을 안 키우면 되고, 오히려 아기에게 동물이 있는 환경을 제공해주고 싶은 부부라면 동물을 키워도 좋은 것, 즉 선택의 문제인 것이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삶과 그렇지 않은 삶은 어디까지나 각자가 성향과 가치관과 삶의 방향에 맞춰 결정한다.

 

다른 사람이 선택한 삶의 모양에 대해 좋고 나쁨을 평가하거나 훈수를 두는 것은 분명히 매우 조심스러우며, 상대방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만 하는 일이다.

 

상대방의 가치에 대한 기본적인 배려가 평소에는 그럭저럭 잘 지켜지다가도, 어쩐지 결혼과 아기와 고양이의 문제에서는 당연한 조언과 오지랖으로 여겨지며 거침없이 발현되는 것 같다.

 

인생의 중요한 사건들이라서, 먼저 겪은 자들의 조언이 당연히 필요할 것으로 여겨지는 모양이다. 하지만 삶의 방식은 사람의 수만큼 있으며 그중 정답은 없다.

 

참견하는 이들의 마음이 때로는 걱정과 호의지만 때로는 불편한 간섭인 것은 분명하다.

 

동물과 함께 사는 삶은 내가 신중하게 결정한 길이라는 걸 인정받고 싶은 게 큰 욕심일까?

 

"결혼과 아기와 고양이는 제가 알아서 할게요!"

 

박은지 칼럼니스트(sogon_abou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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