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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먹 위 고양이처럼 게을러지자, 제주 짜이다방

 

[박은지 객원기자] 마당에는 통나무 몇 개가 아무렇게나 쌓여 있었다. 요즘 세상에 통나무를 어디다 쓰나, 했는데 가게 안에서 드럼통에 장작을 넣고 군고구마를 굽는다.

 

마당에 들어선 손님을 보고 앞장서는 건 삼색 고양이 한 마리. 고양이를 쫄래쫄래 따라 들어가면 느린 제주보다 더 느린 시간이 흐르는 것 같은, 인도 느낌이 물씬 나는 카페 짜이다방이다.

 

 

카페 안에는 테이블 몇 개가 놓여 있고, 한쪽은 좌식이라 폭신한 방석 위에 한번 앉으면 나른함이 뚝뚝 흐를 때까지 엉덩이를 뗄 수가 없다.

 

나지막하게 인도 느낌의 음악이 흐르고, 인테리어에 사용된 색색의 천도 이색적인 분위기를 살린다. 사장님보다는 옆집 언니 같은 호칭이 어울리는 선영 씨는 2012년에 제주에 정착해 1년 만에 카페를 열었다.

 

 

처음에는 서울이 답답해져 차에 텐트를 싣고 무턱대고 제주에 내려왔다. 1년 정도 일단 살아보려는 참이었는데, 살다 보니 조금 더 있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 지금까지 지내고 있다고. 인도 여행을 자주 다닌다는 그녀는 제주 한편에 자신만의 작은 인도를 만들었다.

 

“인도는 새벽시장 같은 면이 있어요. 좋아한다는 마음이랑은 또 조금 다른 것 같아요. 덥고 더럽고 사기 치는 사람도 많고, 정신없는데 그곳에 있으면 내가 살아있구나-라는 강한 느낌이 들었어요. 힘들거나 다운되는 일이 있으면 이상하게 인도에 가고 싶어져요.”

 

 

고양이를 키우게 된 것은 카페를 오픈했던 즈음으로, 처음엔 고양이들이 집과 카페를 오가며 지내다가 아예 카페에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럴 법도 한 게, 넓은 마당에서 나무도 타고 꽃향기도 맡고 잠자리도 쫓고, 놀 거리가 천지인 카페를 고양이들이 더 마음에 들어 하는 건 당연했다.

 

“당시 길고양이가 친구네 게스트하우스 창고에 자리를 잡고 새끼를 낳았는데, 그중 두 마리를 데려와 키우게 되었어요. 턱시도는 쿠쿠시, 삼색이는 로로미예요. 둘이는 사이좋은 남매에요.”

 

 

두 마리 남매가 3년 동안 함께 지내고 있었는데 지난 5월, 턱시도 고양이 쿠시시가 교통사고로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다.

 

가게 입구에 아이를 묻어주고 그 자리에 작은 묘목을 심었다. 선영 씨도, 로로미도 몇 달 동안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조금씩 이겨내고 지내고 있다고.

 

짜이다방에 들어온 손님들은 처음에는 이색적인 분위기에 두리번거리다가 이내 해먹에 늘어져 있는 고양이와 같은 자세가 된다.

 

 

고양이의 성향을 모르고 험하게 다루는 손님들의 행동은 좀 곤란하지만, 고양이를 좋아하는 손님들은 옷에 털이 묻어도 아랑곳 않고 제주에서 뜻밖에 만난 작은 친구와 음료가 식는 줄도 모르고 뒹굴거린다.

 

짜이다방에서 대표적인 짜이라는 음료는 인도를 비롯한 남아시아 지역에서 아주 대중적으로 마시는 일종의 밀크티 종류인데, 일반적으로 프렌차이즈 카페에서 파우더의 달달한 맛으로 만날 수 있었던 것과 달리 짜이다방에서는 스스로 맛을 찾아가야 한다.

 

“짜이다방의 짜이는 한 가지로 정해져 있지는 않아요. 처음 마시는 사람, 단 걸 싫어하는 사람, 우유를 안 먹는 사람, 향신료를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사람 등 다양한 취향에 맞게 끓여드리거든요. 하지만 기본적으로 짜이는 ‘지옥처럼 뜨겁고, 악마처럼 강하고, 죄악처럼 달콤’한 음료랍니다.” 

 

 

시간의 마디를 늘려둔 것 같은 같은 낯선 음악이 흐르고, 나지막하게 대화하는 목소리들, 짜이 티와 가끔 선영 씨가 나눠주는 화덕에서 꺼낸 노란 고구마, 짜이다방은 제주와 잘 어울리면서도 한편 또 다른 여행지에 도착한 것도 같다.

 

고양이처럼 게으름이 허락되는 나라로의 여행, 다음 목적지는 잠시 잊어버려도 좋다.

 

(주소 : 제주도 서귀포 안덕면 사계리 19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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