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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지의 묘생묘사] 고양이를 무서워하는 나의 남자

예비 신혼집에 종종 놀러오던 예비 신랑은 친구가 내게 맡긴 아기고양이를 처음 보고는 눈이 동그래졌다.

 

그는 이 녀석에게 오뎅꼬치 장난감을 흔들어보고, 자고 있는 얼굴을 살며시 쓰다듬어보기도 했다.

 

아직 함께 사는 게 아니라 놀러왔을 때만 잠깐씩 시간을 보내는 것이라, 아기고양이가 밤중에 미친 듯이 뛰어다니거나 내 다리를 발톱으로 찍고 타고 오르는 모습은 자주 보지 못했고 나도 굳이 알려주고 싶지는 않았다….

 

 

 

평소 고양이를 무서워하던 그라도 고작 한 뼘이나 될까 싶은 작은 생명체를 보니 무섭기보다는 신기한 모양이었다.

 

그가 아기고양이에게 점차 적응하고 심지어 금방 친해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는 넌지시 물었다.

 

"우리, 이 고양이 키울까?"

 

나를 만나기도 훨씬 전부터, 그는 고양이를 무서워하는 남자였다. 아마 집안 환경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그의 가족이 모두 동물을 무서워했고 특히 어머니가 고양이를 싫어하셨다.

 

어릴 때 당연히 병아리부터 시작했고(닭으로 성장했다), 엄마가 강아지를 키우자고 데려와 15년 동안 키운 우리 집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그러니 당연히 그에게 고양이는 낯선 동물이었다. 길고양이가 자기를 공격할 것 같아 길에서 만나면 먼저 위협하곤 했다는 그였다.

 

즉, 여태까지 그는 고양이에 대해서 개뿔도 몰랐다. 나와 2년 동안 사귀며 고양이에 대한 생각을 조금씩 바꿔가고 있었지만 한순간에 20년 넘게 쌓아온 이미지가 바뀔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와 같이 고양이를 키울 수 있을까? 데이트를 할 때도, 내 나름의 미래 계획을 나눌 때에도 내 의견을 존중해주는 그였지만 고양이를 키우는 일까지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되었을 터라 내심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그는 의외로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키우려고 한 거 아니었어?'하며. 망설임도 없이 흔쾌히 대답하자 오히려 내가 기분이 복잡해졌다.

 

우리는 앞으로 결혼을 할 거라서, 고양이를 키우기로 결정한다면 반드시 공동 책임이어야 했다. 물론 내 욕심일지도 몰랐지만, 나만 좋아하고 그가 양보하는 입장으로 키운다면 수도 없이 갈등하고 싸우게 될 일이 생길 것이다.

 

고양이가 털을 너무 많이 뿜는다, 집안 가구에 스크래치를 한다, 잘 때마다 뛰어다니며 손발을 깨문다… 등의 수많은 불편함에 대해서, 고양이와 함께 살아보지 않은 그는 아직 몰랐다.

 

동물을 키운다면 중간에 그만둘 수 없다는 걸 그는 이해하고 있을까? 만약 어떤 이유 때문에 중간에 고양이를 못 키우겠다고 선언하는 일이 생기면 무엇보다 그에게 실망할 것이 분명했다.

 

"고양이를 키우면 매일 밥도 주고 화장실도 치워줘야 해. 집안 가구 다 물어뜯고, 고양이 털 엄청 빠지는 건 알아? 그리고 어디 아프기라도 하면 병원비도 엄청 비싸다고… 일단 더 고민해봐."

 

나는 오히려 한 발 물러나 그에게 부탁했다. 어쨌든 일말의 신중함은 얹어내고 싶었다. 그는 과연 집안을 발톱으로 날아다니는 녀석을 진심으로 받아들여줄까?

 

 

결혼하고 나면 이제부터 남편과 고양이 사이를 중재하고 이해시키는 것은 내 몫이었다. 나는 인간관계에서라면 결코 하지 않았을, 귀찮은 중재자 역할을 기꺼이 맡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 노력과 상관없이 그가 고양이를 싫어하게 될까봐 무척 걱정이 됐다. 키우기로 결정한 시점에서, 일단 시작하면 그만두는 건 없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동물을 책임진다는 것에 대해 길게 이야기를 나눴지만 너도 나만큼 고양이를 좋아했으면 좋겠다는 말은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했다.

 

2년여의 연애를 했지만 우리는 함께 무언가를 키워본 경험이 없고, 그건 아마 내가 그에 대해 지금까지 알고 있는 것과는 또 전혀 다른 영역에 숨어 있는 모습일지도 몰랐다.

 

미래의 엄마로서의 내가 어떨지 알 수 없듯이, 설사 남편으로서 완벽할지언정 아빠로서의 그는 짐작할 수 없듯이.

 

하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 우리는 이 고양이를 키우기로 했다. 우리 두 사람의 공통 이니셜을 따서 이름을 제이라고 지었다.

 

‘그냥 잠시 보호하는 거야’라고 생각했던 아기고양이는 비로소 내 가족이 되었다.

 

박은지 칼럼니스트(sogon_abou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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