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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물어간 전성기, 지금은 다정한 고양이 마을 '허우통'

대만의 고양이마을 허우통

 

[박은지 객원기자] 어릴 때는 주변에 고양이가 많은 줄을 몰랐다. 길고양이를 마주친 적도 거의 없었다.

 

우리 동네에는 길고양이가 살지 않는 줄로만 생각했는데, 일단 한번 길고양이를 의식하고 나니 고양이는 사람 사는 길목 어디에나 있었다.

 

관심을 기울이면 길고양이가 살아가는 길이 보인다. 하지만 수많은 길고양이들이 평범하게 살아가기에 인간의 땅은 얼마나 척박한지.

 

어쩌면 우리가 길고양이들의 땅을 빼앗고 가로막고 있는 건 아닐까.

 

길고양이에게 기꺼이 그들의 땅을 함께 쓰도록 내어준 대만의 허우통에서는 모든 고양이가 여유로운 걸음으로 걷는다.

 

고양이를 보고 눈살을 찌푸리거나 불운의 상징처럼 여기는 건 이 평화를 마주보고 있으면 어쩐지 머쓱해지는 일이다.

 

천천히, 낮은 곳을 둘러보며 걷는 사람들도 고양이처럼 덩달아 서두르지 않는다.

 

 

석탄 캐던 마을

 

일본에서는 고양이 역장 타마가 있는 작은 기시역이 큰 이슈가 된 적 있었다.

 

이 역은 더 이상 기차가 다니지 않아 거의 폐쇄될 뻔했으나 길고양이였던 타마를 역장으로 임명하며 유명세를 타 전 세계 여행객들이 찾아오는 관광지가 되었다.

 

고양이의 힘으로 널리 알려지게 된 대표적인 장소는 대만에 또 있다. 바로 대표적인 고양이 마을로 불리는 허우통이다.

 

 

허우통은 예전에는 광산업으로 번성했던 곳으로, 1970년대까지만 해도 인구가 6천 명이나 되던 대만에서 커다란 탄광 마을 중 하나였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탄광산업이 점차 사양길로 접어들며 허우통도 폐광촌이 되고 주민도 수백 명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그렇게 석탄으로 떠오른 전성기를 떠나보낼 뻔했던 허우통에는 대신 고양이들이 모였다.

 

마을에서 고양이를 핍박하지 않고 자연스레 받아주며 그 수가 더 늘어나기 시작했고, 사진전 등으로 고양이가 많은 마을이라는 입소문이 퍼지며 지금은 ‘고양이 마을’로 더 유명해졌다.

 

그 덕분에 허우통 기차역에는 본격적으로 고양이 그림이나 장식품 등이 하나둘 늘었다. 심지어 화장실에도 고양이 그림이 붙어 있을 정도.

 

허우통 주민들도 모여드는 길고양이들에게 더욱 호의적으로 대해주게 되었고, 말 그대로 고양이와 공생하는 마을이 된 셈이다.

 

 

한 걸음에 고양이 한 마리

 

대만 여행객들은 보통 핑시선(기차)을 이용해 허우통에 오거나 혹은 택시 투어를 통해 스펀, 지우펀 등 주요 관광지를 묶어 돌아보기도 한다.

 

우리는 택시를 미리 예약했는데, 허우통에 도착하자 기사님이 역사의 구름다리를 건너 올라가면 더 많은 고양이를 볼 수 있다고 안내해 주었다.

 

반대편으로는 관광안내소와 작은 상점가가 있고, 더 들어가면 옛 탄광마을의 흔적이 남아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허우통은 작은 기차역에 굽이굽이 골목길로 이루어진 마을이 전부인 셈이라 꼼꼼히 구경해도 한 시간이면 충분할 정도.

 

하지만 굳이 이 작은 마을을 찾아온 이들이라면 조금 더 느긋하게, 천천히 걷다 보면 더 많은 즐거운 만남을 누릴 수 있다.

 

계단에, 난간에, 그냥 나무 그늘에, 한 걸음 걸을 때마다 고양이들이 집 주인 같은 여유로운 눈빛으로 여행자들을 맞이한다.

 

어떤 이는 아예 고양이 장난감을 가지고 와서 본격적으로 고양이 낚시를 하기도.

 

 

마을 지도가 있지만 지도를 유심히 보고 걷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다들 고양이의 느린 걸음과 쫑긋거리는 귀 끝과 호기심 어린 눈빛을 마주해보며 걷는다.

 

개중에 한국인들은 ‘여기 고양이는 사람을 하나도 안 피하네’ 하고 신기해하는 이들도 많다.

 

우리나라 고양이들은 사람의 위협을 받아봤기 때문에, 사람에 대한 경계가 학습되어 사람을 피한다.

 

그 탓에 경계하는 모습을 도리어 위협적으로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서로 오해가 쌓이고 더 멀어지게 된 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인적 드문 산골의 야생동물이 사람을 보고 오히려 호기심을 보이고 다가오듯이, 누굴 경계할 필요가 없는 고양이 마을의 고양이들은 아무데나 주저앉아 그루밍을 하곤 한다.

 

 

시대의 발전과 함께 석탄의 전성기를 지나게 된 마을은 이제 고양이들에게 문을 열어주며 작은 생명들과 공존하는 보금자리가 되었다.

 

허우통의 제2막은 물론 화려하지는 않지만, 분명 다정하다.

김세형 기자 eurio@inb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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