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컨텐츠 바로가기
뉴스 > 사회

길고양이 사체를 치우며

"묻어줬어? 묻어주지."

 

방금 길고양이 사체를 치우고 온 나에게 와이프가 하는 말이었다.

 

"묻어주는 것은 불법이야. 쓰레기봉투에 담아 버렸지."

 

이렇게 말하면서 속으론 '자기도 한 번 봤어야지. 그걸 어떻게 묻어 ㅠㅠ' 하고 싶은 말이 굴뚝 같았다.

 

어제(10일) 오후 이발을 하러 가던 차에 우연히 딸아이 다니는 초등학교 교문 옆 수풀 속에서 길고양이 사체를 발견했다. 왼쪽으로 누워 앞발을 45도쯤 하늘로 향하고 있었고 다 큰 녀석이었다.

 

길고양이 이야기가 워낙 많아서 그런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아이들 위생을 위해서라도 치워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지나쳤다.

 

이발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여전히 그대로였다. 시청에 신고할까 하다가 '그래, 내가 치워주지 뭐. 죽은 지 얼마되지 않은 것같은데' 이렇게 마음을 먹었다. 

 

생활쓰레기로 버리면 된다는 길고양이 사체 처리법을 인터넷에서 다시 확인했다. 집에서 비닐봉투와 신문지, 그리고 10리터들이 쓰레기봉투와 비닐장갑을 갖고 나왔다.

 

'쓰레기봉투를 들고 어디 가느냐'는 말에 길고양이 치우러 간다고 했고, 호기심에 따라 나오겠다는 아이는 주저 앉혔다. '뭐 좋은 일이라고'

 

잔가지들을 헤치고 작업을 시작했다. 당초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죽은 지 며칠이 지난 상태였다. 부패가 진행된 탓에 생전의 몸보다 부풀어 올라 있기도 했고 냄새도 퍼지기 시작했다. 

 

가져간 비닐로는 처치가 안됐다. '이게 뭔짓인지. 그냥 신고할 걸 그랬어 ㅠㅠ' 이대론 안되겠다 싶어 아파트 관리실로 가 대형 비닐봉투를 얻어 왔다.

 

수풀섶에서 끌어내서 비닐봉투에 담고, 보이면 좋지 않으니 신문지를 다시 밀어 넣고 그리곤 쓰레기봉투에 담았다, 아니 구겨 넣었다. 그리곤 냅다 잰걸음으로 아파트 쓰레기 투입구에 집어 넣었다.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을 시간이었지만 땀은 비오듯 오고, 뭐가 달라 붙은 듯한 느낌이 몸을 감쌌다. 그래서 집에 와서는 옷도 죄다 세탁통에 던져 넣었다.

 

불쌍하다는 생각 반, 또 착한 일 한 번 해야지 하는 오만의 결과였다.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다.

 

길고양이 사체를 봤다면 첫째 즉각, 각 지자체 민원실에 신고할 것. 둘째 본인이 치우기로 마음 먹었다면 비닐봉투와 장갑, 그리고 긴 팔 긴 바지 등 장비를 확실히 갖출 것을 권한다.

 

또 치우다보면 못 볼 꼴을 볼 수도 있으니 절대 머뭇대지 말 것을 권한다. 시간만 길어지고 더 기분이 나빠질 뿐이다. 사람들은 무슨 구경이나 난 듯 보기도 하는데 중간에 그만둘 수도 없다. 어제도 길가던 사람이 지켜보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살아 있을 때 최소한 괴롭히지 말 것. 자연적이 아니라 사람에 의해 생을 마감하면 그 사체는 또다른 사람이 치워야 할테니 말이다.

 

물론 길 위의 생명들도 다음 생에는 더 나은 삶을 살길 바란다.

 

<이글은 노트펫 독자의 사연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노트펫은 독자 사연을 환영합니다. 문의: 노트펫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notepet/), 이메일: eurio@inbnet.co.kr

 

 
목록

회원 댓글 0건

  • 비글
  • 불테리어
  • 오렌지냥이
  • 프렌치불독
코멘트 작성
댓글 작성은 로그인 후 작성이 가능합니다.
욕설 및 악플은 사전동의 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스티커댓글

[0/30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