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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양이 에세이] 첫 해가 뜨는 곳, 빈 주머니로 고양이를 만났다

 

아침부터 어수선한 기분의 이유를 쉽게 떠올릴 수가 없었다. 누가 말만 걸어도 울 것처럼 예민해진 마음에 불쑥 기차를 타고 동해에 닿았을 때가 새벽 4시 반, 아침이 빨리 오는 여름이라 이미 하늘이 옅어지고 있었다.

 

해돋이를 보겠다고 정동진에 온 적은 몇 번인가 있었고 심지어 어느 해에는 새해 첫 날을 정동진의 인파 속에서 맞이하기도 했지만, 나를 맞이하는 일출은 늘 구름이 가리고 있었던지라 멋진 해돋이를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썩 없었다.

 

그저 내 어수선한 마음이 더 낯선 곳에서 차분해지도록 달래볼 요량이었는데, 이 하루의 첫 태양은 정확히 수면 위에서 말갛게 떠올랐다.

 

 

어느덧 바다도, 모래도, 사람들의 그림자도 모두 아침 색깔을 띠고 있었다. 한낮의 빛과도 다르고, 깊게 저무는 노을빛과도 다르고, 바다에서 떠올라 도시까지 건너온 아침 해를 맞이하는 것과도 달랐다.

 

이성을 끌어 모아 이 첫 해가 이미 어딘가를 훑고 저물어 온 빛이라는 것을 상기해 보아도, 여전히 오늘을 터트리는 첫 햇빛의 감동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물결 위로 부서지는 햇빛을 마치 주워 담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매일 맞이하는 아침에 새삼 감탄하고 나니 배가 고파졌다. 일출이 관광지인 곳이라 이른 시간인데도 문을 연 식당이나 포장마차가 제법 있었다. 7천 원짜리 순두부 정식을 먹고 나오는데 점박이 무늬의 강아지 한 마리가 휙 달려갔다.

 

어쩜 이리 바둑이처럼 생겼담, 내심 웃으며 시선으로 따라갔는데 개는 이미 사라졌고 그 자리엔 고양이가 바삐 걸었다. 자연스레 고양이에게 관심을 옮겨 지켜보니 라면과 어묵 같은 것을 파는 포장마차에 태연하게 버티고 서서 밥 주기를 기다리는 모양이었다.

 

 

당당한 폼으로 서서 밥을 내놔라 하고 있는데, 오늘따라 아직 먹을 게 없다는 목소리만 들릴 뿐 제때 밥이 나오지 않으니 냐옹냐옹 고개를 들이밀며 적극적으로 먹을 걸 요구하는 게 아주 당돌한 녀석이었다.

 

고개를 들이밀고 호통을 쳐도 먹을 게 나오지 않으니 완전히 삐친 표정으로 돌아서는 바람에, 지켜보고 있던 내가 괜히 송구해지고 말았다. 청량리에서 기차를 탈 때의 울적함은 달걀노른자 같은 태양이 톡 터트려 버린 지 오래였고, 이제 이 고양이님에게 바칠 먹이가 내 주머니 속에 아무 것도 없다는 것만 중요했다.

 

별 수 있겠는가. 흥 하고 가버리는 뒷모습만 한참을 지켜볼 수밖에. 돌아선 고양이의 그림자도, 말간 아침 색깔이었다.

 

박은지 <흔들리지마 내일도 이 길은 그대로니까> 中

송은하 기자 scallion@inb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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