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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캐리어를 뒤지는 고양이 호스트

타이밍이 맞아 운 좋게 갈 수 있었던 나의 첫 번째 유럽 여행, 맥주를 좋아해서 독일은 꼭 포함해 가보고 싶었다. 독일이라면 프랑크푸르트를 가면 되나 싶었는데, 이미 유럽을 다녀온 동생이 다른 도시를 추천해줬다.

 

동화처럼 예쁜 지붕이 있는 하이델베르크, 둘러보는 것은 한나절이면 된다는 작은 도시였다. 나는 다른 도시로 이동하지 않고 사진 찍으며 천천히 둘러볼 요량으로 이틀 동안 머물기로 했다.

 

 

여행지에서 떠들썩하게 새 친구를 사귀는 것을 좋아하는 편도 아니고, 숙소에서 잠잘 때만은 최대한 안심하고 싶어서 외국에 가면 웬만하면 호텔에서 자려고 한다. 그러다 에어비앤비를 이용하게 됐다.

 

호텔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대의 방이 다양하게 있어, 독일 하이델베르크 숙소를 여기에서 고르기로 했다. 실제로 독일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이 궁금하기도 했다. 그중 마음에 드는 방을 클릭해보니, 가정집에 ‘귀여운 고양이 한 마리가 살고 있다’는 설명이 덧붙여져 있었다.

 

 

내가 가려는 날짜에 다행히 방이 비어 있어 예약을 걸자, 호스트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호텔 예약과는 느낌이 전혀 달랐다. 호텔이라는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에게 나의 방문을 허락받는 것 같은 과정이었다.

 

어느덧 여행 날이 다가와 파리를 거쳐 하이델베르크에 도착했다. 다소 쌀쌀맞은 무채색 도시처럼 느껴졌던 파리를 떠나 낮고 화사한 지붕이 늘어서 있는 이 작은 도시에 도착하니 또 새로운 설렘이 샘솟았다.

 

에어비앤비는 빈 집을 빌려주는 경우와, 그 집에 호스트가 살고 있어 함께 지내야 하는 경우가 있는데, 미리 알고 있었듯 이곳은 집 주인이 거주하고 있었다.

 

집에 도착하자 그녀가 밝게 반겨주었다. 부드러워 보이는 주황색 곱슬머리의 그녀는 내가 쓸 방과 공용 욕실, 부엌 등을 소개했고, 흘깃 살폈지만 그녀의 고양이는 어디서 자고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하이델베르크는 정말로 아주 작은 도시라서, 유일한 관광지는 하이델베르크 성밖에 없었다. 다만 골목마다 아기자기한 고유의 정취가 있고, 또 치즈가 듬뿍 들어간 샌드위치가 아주 맛있었다.

 

조금 심심한 듯했지만 나는 이곳이 마음에 들었다. 독일 사람들은 저녁을 오후 4시에 먹는다고 하던데, 정말일까? 그건 모르겠지만 정말 오후 6시쯤 되면 동네 가게들이 다 문을 닫아 밥 먹을 곳이 없었다. 나는 일찌감치 집으로 돌아와 독일의 내 방에 몸을 눕혔다.

 

잠시 씻고 돌아오니 뭐가 후다닥 움직여 침대 밑으로 숨었다. 이 집에 살고 있다는 고양이가 틀림없었다. 역시, 궁금증을 못 참고 나왔구나 싶어 슬그머니 미소가 번졌다.

 

 

온통 낯선 것들 투성이인 이 먼 나라에서 며칠을 보내다 보니 종종 쓸쓸해지던 참이었는데, 고양이라면 내게 익숙하고 친근한 친구였으니까. 작은 고양이는 이내 분홍색 코를 뽐내며 나와 내 캐리어 위에 가지런히 발을 모으고 앉았다.

 

집 주인은 여행자의 불편을 염려하여 편히 쉴 수 있도록 조용히 배려해 주었지만, 이 작은 꼬마 호스트는 거침없이 나에게 다가와 묻고 살피고 냄새를 맡았다.

 

 

다음 날에도, 오후 내내 거리를 구경하고 걷다가 숙소에 돌아오면 사르르 긴장이 풀렸다.

 

하루 종일 산 자잘한 포획물들을 들여다보며 정리하고, 와이파이를 잡아 애인에게 기별을 하고, 그러다 화장실에 가고 싶어 방문을 열면 언제부터 그 앞에 있었는지 고양이가 문틈으로 안을 들여다봤다.

 

닫혀 있는 문이 궁금해 못 견디겠는 모양이었다. 붙임성 있는 녀석은 미끄러지듯 방 안으로 들어와 내 짐을 들여다보고 책상 위로 올라가 방을 휘 검사하듯 둘러보기도 했다.

 

 

사실, 누군가의 집에 놀러가거나 혹은 우리 집으로 초대하는 일은 그리 가볍지 않다. 서먹한 친구를 집으로 불러본 적이 있던가? 집에 가는 일은 원하든 원치 않든 서로의 취향과 사생활을 들여다봐야만 하는 행위다.

 

헌데 남의 집, 그것도 외국의 생판 모르는 이의 사적인 공간에 짧게나마 깃들겠다는 것이 차라리 비싼 호텔을 잡는 것보다 불편한 모험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바로 그 덕분에, 지구 저쪽에 사는 낯선 이의 삶의 단면을 짧게나마 공유할 수 있었다. 지구 저편에서 누군가 나처럼 고양이를 키우며 살고 있다는 사실을 몸으로 체감하는 것이 마치 이웃처럼 친근하게 느껴졌다.

 

한밤중에도 잠을 자다 일어나 낯선 손님의 다리에 몸을 부비며 아는 체를 하는 ‘그녀의 고양이’ 덕분에, 나의 짧은 독일 일정은 마치 매일 내 집으로 돌아오는 듯한 여행이 되었다.

 

박은지 객원기자sogon_abou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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