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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양이 에세이] 맥주와 고양이  

 

 

“비 오는 날에는 낮술이죠.”

 

사장님이 맥주를 건네며 슬그머니 웃었다. 비 오는 날의 종달리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다.

 

수국이 한창이었으나 수국 길을 따라 무작정 걸을 수 있는 날씨가 아니었다. 별 수 없이 예약한 게스트하우스 근처의 카페에 들어가 온종일 시간을 보내야 했다.

 

바다가 안 보이는 곳에 있는(사실 옥상에서 보면 조금 보인다고 한다) 이 카페에는 고양이 달리와 시원한 크림생맥주가 있었다. 메뉴판에 있는 당근주스를 먹어보고 싶었지만, 눅눅한 몸을 덥히기 위해 일단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기다리는 동안 고양이 달리는 다른 손님을 베개 삼아 잠이 들어버렸다. 달리의 시선을 끌기 위해 은근히 애쓰던 나는 조금 실망했지만, 대신 사장님이 감자 샐러드 한 접시를 내주셨다. 달그락거리는 포크 소리가 빗소리와 섞였다.

 

 

혼자 앉아 있던 다른 손님과 눈이 마주치자, 또래로 보이는 그녀가 “비가 와서 어떡해요.” 하고 말을 붙여왔다. 여행자 같지 않아 “제주에 사시는 거예요?” 하고 내가 물었다.

 

“아뇨, 인천에 사는데 놀러왔다가 예정보다 길게 머무르게 됐어요, 저기 게스트하우스의 스태프예요.” 하고 그녀가 대답했다.

 

“제주에 한번 오면 예정보다 길게 머무르게 된다고들 하더니 정말이네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때로는 혼자의 시간을 갖기 위해 떠나는 여행에서도 결국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

 

비 오는 날 여행하는 건 확실히 불편한 일이지만, 그 덕분에 여행지의 한 곳에서 오래 머무를 수 있는 것은 즐거웠다. 낮술뿐만 아니라 밤술까지 먹고서야 카페를 나섰다.

 

비를 맞는 건 이제 싫지만 빗소리를 듣는 것은 얼마든지 좋고, 어딘가 나가야만 한다고 유혹하는 맑은 날씨가 없으니 그저 이곳에 잠시 고여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알차게 보내기에는 늘 부족한 듯 초조했던 시간은 이 순간 솜사탕처럼 부풀어 이미 충만하다. 자고 있는 달리에게, 더 자라고 내 시간을 조금 나눠줄 수도 있을 것처럼 마음이 흡족해졌다.

 

박은지 <흔들리지마 내일도 이 길은 그대로니까>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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