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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지의 묘생묘사] 길고양이로 사는 게 더 행복했을까

마음의 준비는 어떻게 하는 걸까 ⓶

 

 

병의 이름도 알지 못한 채 제이를 입원시키고, 울컥 치솟는 마음을 억누르며 생각을 거슬러봤다. 왜, 태어난 지 1년도 안 된 이 작은 고양이에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만약 누군가에게 같은 일이 생겼다면, 네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줬을 것이다. 네가 잘못해서 생긴 일이 아니라고, 고양이가 널 원망할 리는 없다고, 충분히 좋은 가족이었으니 죄책감은 갖지 말라고.

 

나 역시 원래는 어떤 일이 생겨도 그냥 일어나야 할 일이라 일어났으려니, 생각하는 편이었는데 막상 내 고양이가 병에 걸렸다고 하니 내가 쏘아 보낼 수 있는 화살의 과녁은 오로지 나밖에 없었다.

 

내 집에서, 내가 주는 밥을 먹고, 내가 돌보는 손길 속에서 지내던 아이인 것이다.

 

내가 혹시 밖에 나갔다 와서 손을 안 씻었던가? 집에서 남편과 다투는 소리에 스트레스를 받은 건 아닐까?

 

어린 길고양이였던 제이를 내가 책임지기로 한 건데……. 어쩌면, 만약에, 나를 만나지 못하고 그냥 길고양이로 살았더라면 그냥 더 건강하고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었던 건 아닐까.

 

불행한 일이 닥쳤을 때 뇌의 사고회로가 대개 그렇게 흘러가듯 안 좋은 생각만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나에게 온몸을 다 맡기던 이 작은 생명 하나를 내가 어찌해줄 수 없다는 무력함은, 3kg도 되지 않는 아기고양이 한 마리의 무게와는 비교할 수 없이 묵직하게 나를 내리눌렀다.

 

다음 날, 병원에서 권장했듯이 CT를 찍기 위해 더 큰 동물병원으로 옮겼다. 그곳에서 다시 이런저런 검사를 처음부터 하루 종일 진행했지만, 결국 CT를 찍어봐야 알 것 같다는 결론이 났다.

 

또 입원을 하고, 마취를 하고……. CT 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며칠을 기다려야 했고, 그러는 동안 수의사 선생님이 또 각종 추측 병명을 들려주셨다. 그중 또다시 고양이 복막염의 가능성…….

 

고양이 복막염은 치사율 100%라고 할 수 있는 심각한 질병으로, 수의사가 아니더라도 고양이를 키우고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그리고 듣고 싶지 않은 병명 중 하나였다. 침착한 척을 하고 있던 마음이 또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복막염 가능성의 수치가 아슬아슬하다고 했다가, 아닌 것 같다고 했다가, 또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가, 다양한 소견 끝에 나온 결론은 ‘어쨌든 아직은 뭐라 확실히 말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병명을 기다리던 며칠 후, 최종적으로 복막염은 아니었으나 그에 못지않은 절망적인 이야기가 쏟아졌다. 림프종, 그중에서도 흉선이라는 위치에 있는 ‘흉선 림프종’인 것 같다고 했다.

 

몰랐을 때는 울면 무슨 큰 일이 나버린 것 같을까봐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큰 일이 난 게 맞는 것 같았다. 마음을 추스르기를 체념하고 나는 울었다.

 

일단은 여전히 몸에 흉수가 차고 있어 숨 쉬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매일 병원에서 주사기로 흉수를 빼주어야 했다.

 

 

호흡이 불안정한 탓에 이틀 입원, 이틀 퇴원, 또 이틀 입원하는 식의 패턴을 되풀이하다가 밤 11시가 넘어서 수의사 선생님에게 전화가 왔다. 선생님들이 의견을 모아 심각하게 고민해보고 있는데, 수술을 한다면 아무래도 아주 힘든 수술이 될 것 같다고 했다.

 

중요한 혈관이 많이 지나가는 너무나 위태로운 위치이고, 수술 중에 위험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짜내어 네, 네, 대답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제 내가 믿을 수 있는 건 병원도 아니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건강하다고 생각했던 제이의 기적 같은 회복력도 아니었다.

 

제이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블로그에 간략하게 썼는데, 그리 왕래하지 않던 고양이 키우는 이웃이 ‘가망 없는 위험한 병으로 진단받고도 몇 년 뒤에 멀쩡하게 잘 살고 있는 아이들도 있다더라’는 댓글을 남겨준 것이 우습게도 가장 희망적이게 들렸다.

 

박은지 칼럼니스트(sogon_abou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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