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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지의 묘생묘사] 고양이와 산다는 상상이 갑자기 현실이 됐다

 

많은 고양이들이 사람의 삶에 끼어들 때 그렇듯 나에게 고양이가 오는 일도 전혀 예기치 못한 순간에 갑작스럽게 일어났다.

 

친구가 술 먹고 집에 가는 길에 ‘냥줍’한 고양이를 엄마가 너무 싫어하셔서 당장 고양이가 지낼 곳이 필요하다는, 사정 설명을 빙자한 강력한 요청에 나는 길게 생각할 것도 없이 ‘걱정하지 마, 일단 내가 맡을게’라는 호언장담을 날리고 말았던 것이다.

 

사실 고양이를 키우는 것은 오래 전부터 상상해오던 일이었다.

 

집에서 나와 처음 자취를 시작했을 때는 오피스텔 원룸에서 살았는데, 4-5평짜리 손바닥만 한 공간인데다 어차피 반려동물 금지여서 현실적인 계획을 세워본 건 아니었다.

 

그저 커튼이 살랑살랑 나폴거리는 집에서 나는 책을 읽고 고양이는 낮잠을 자는 풍경을 나는 종종 상상했다.

 

침묵과, 평화와, 심심할 정도로 잔잔한 일상은 내게 간절히 필요한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고요한 고양이가 무척 잘 어울렸다. 


다음 날 친구가 집에 고양이를 혼자 둘 수 없다고 고양이를 데리고 출근했고, 내가 아침 일찍 친구네 회사로 가서 고양이를 데리고 왔다. 

 

담요에 쌓인 채로 지하철에서 회사까지 얌전히 이동한 걸 보니 어지간히 순한 녀석인가 보다 싶었다.

 

병원에 들렀더니 귀 진드기도 없고, 건강 상태도 괜찮아 보인다고 했다.

 

작은 고양이를 내 품에 받아들고 집에 오는 길에 사료, 모래, 화장실을 바리바리 사서 짊어지고 왔다.

 

 

1kg나 겨우 될랑 말랑한 요 작은 고양이에게 필요한 물건들은 너무 무거웠다. 집에 들어와 헉헉거리며 물건들을 내려놓고 고양이도 풀어주었다.

 

분명 고양이는 환경 변화에 매우 예민한 동물이라고 알고 있는데, 이 새끼고양이는 잠깐 세탁기 아래에 들어가 숨더니 5분도 안 돼서 나와 집을 한 바퀴 휘 돌았다.

 

그리고는 바로 밥을 먹고 태연히 화장실에 갔다. 그땐 그게 깨발랄의 예고편인 줄도 모르고 적응력이 훌륭한 게 기특하다고만 생각했다….

 

일단은 '잠깐 데리고 있는 거야'라고 생각하고 이름을 짓지 않았다.

 

아직 너무 작아서 점프다운 점프도 못 하는 이 새끼고양이는 집안 탐색을 마치자 내 다리에 기대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잠이 들었다.

 

찬찬히 살펴보니 삼색이긴 한데 맨투맨 티를 입은 것처럼 한쪽 팔만 완전히 갈색인 게 특이했다.

 

심지어 코도 자세히 보면 삼색이 섞여 있었다. 비율이 이상해보일 정도로 귀가 크고 꼬리는 곧았다.

 

내가 다리가 불편해 자세를 바꾸며 뒤척여도 잘도 잠을 잤다. 그게 우리의 첫 만남이었다.

 


그 당시 4개월령의 삼색 새끼고양이를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리면 ‘이 생명체가 정말 고양이일까’ 하는 느낌에 가까웠다.

 

내 상상 속 고양이와는 사뭇 달랐다. 늘어지게 뻗어 자는 낮잠, 책꽂이 위에 올라가 내려다보는 나른한 눈빛, 그런 건 없었다.

 

심지어 아직 고양이라기보다는 미성숙한 어떤 생명체 같았다. 꼬리도 못생긴 막대기처럼 삐죽삐죽했다.

 

우리 집에 온 뒤 아무 문제없이 아작아작 밥도 잘 먹고 기특하게 물도 잘 마셨지만 뭔가 고양이라기에는 모자라 보였다.

 

무엇보다도, 나의 고요한 생활 속 다정한 구성원이 되어주리라 생각했던 고양이는 오히려 내 집의 주파수를 높이고 비명을 생성했다.

 

'물지 마!' '할퀴지 마!' '잠 좀 자자'…로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모든 아기들이 그렇듯 이 아기고양이도 자는 시간이 제일 예뻤는데, 아니 통 잠을 안 잤다.

 

고양이라면 늘어지게 잠도 오래 자고 게으름도 피우고 그래야 하는 거 아니니?

 

아니었다. 이 녀석은 내가 깨어있을 때는 자기도 깨어서 끊임없이 피드백을 요구했다.

 

노트북으로 일하고 있으면 노트북 키보드 위로 올라오는 걸 절대 포기하지 않았고, 밥인지 간식인지를 달라고 할 때는 발목을 깨물었다.

 

책상 위에서 주전부리를 먹으면 끊임없이 물고 도망치려고 했다.

 

일할 때 마음의 평화를 주기는커녕, 일하면서 커피 한 잔에 디저트를 먹는 나의 아주 작은 행복도 포기해야 했다.

 

 

잠을 자려고 누우면 우다다를, 그것도 듣던 대로 평범하게 하지 않고 이불 밖으로 나온 나의 신체 부위를 반드시 깨물면서 했다.

 

아아… 아무리 고양이를 좋아하는 나라도, 육묘 스트레스가 쌓여갔다.

 

집에서 뭘 할 수가 없어서 일할 거리를 들고 카페로 도망가기도 했다. 집에서 일할 때 내 마음의 평화를 줄 것으로 생각했던 고양이가 나를 집에서 쫓아내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아기 동물들은 생존을 위해서 귀엽다고 했던가? 그래도 귀여웠다.

 

말도 안 되는 포즈로 몸을 뒤집고 자는 모습은 못 견디게 예뻤다. 귀여움 하나로 나는 얼떨결에 뒤집어쓴 육묘 스트레스를 견뎌내고 있었다.

 

박은지 칼럼니스트(sogon_abou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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