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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지의 묘생묘사] 말 안 듣는 고양이와 말이 안 통하는 고양이

 

[노트펫] 문득 등줄기가 서늘해진 것을 느낀 나는 휙 고개를 돌려 부엌을 쳐다보았다. 가스레인지 대신 쓰고 있는 전기렌지 위에 커다랗고 노란 털 뭉치가 덜렁 올라가 있는 것이 보였다.

 

1초 정도 내 눈을 의심하다가 벌떡 일어나 전자렌지 앞으로 달려갔다. 화구에 열기를 올리기 위해서는 손가락으로 락을 두 번이나 풀어야 하는, 애도 없는 우리 집에서는 번거롭기 그지없던 기능이 쓸모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이 커다랗고 노란 고양이는 험상궂은 표정을 지으며 전자렌지 앞으로 달려온 나를 눈 하나 깜빡 않고 빤히 올려다보았다. ‘쓰읍!’ 소리를 내어도 태연하게 고개를 돌릴 뿐이다. 할 수 없이 한숨을 내쉬며 달이를 들어 내려놓았다.

 

“여기는 올라가면 안 돼! 위험해!” 일단 말은 해보았지만 달이는 듣는 척도 하지 않고 두어 걸음 걸어가서 발라당 누워버렸다.

 

'이 고양이는…… 그래, 백지다. 새하얀 도화지다. 문명화되지 않은 늑대소년 같은 존재다.' 보호소에서 입양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달이와 살아가기 위해서는 일단 그 점부터 인정해야 했다.

 

첫째와 둘째는 ‘쟤가 뭘 하는 거지?’ 하는 얼굴로 금지된 곳을 죄책감도 없이 헤집는 셋째 달이를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우리 집에서 고양이들이 들어갈 수 없는 곳이 딱 세 군데 있다. 첫 번째는 세탁실, 두 번째는 부엌의 가스렌지, 마지막으로 남편의 옷장이다.

 

남편은 고양이들이 옷장에 들어가려 할 때마다 ‘쓰읍!’ 하며 허락하지 않는다는 의사 표현을 해온 덕분에, 제이와 아리는 남편 옷장이 열려도 그 앞에서 고개만 넣어볼 뿐 안으로 발을 들이지는 않는다.

 

나는 옷에 고양이털이 묻는 것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 편이라 고양이들도 내 옷장에는 그냥 성큼성큼 들어간다. 나의 경우에는 들어가지 못하도록 가르치는 것보다 들어서 꺼내는 게 편해서 그냥 내버려두지만, 싱크대나 가스렌지는 위험해서 최대한 주의를 시켜왔다.

 

물론 고양이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집사가 원치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런 행동을 할 때가 있다. 싱크대 위를 걸어 가스렌지 쪽으로 사뿐사뿐 걸어가는 아리를 발견하면 “아리야!” 하고 불러 경고를 한다.

 

아리는 자신의 행동이 발각당했다는 것만으로 체념하고 싱크대 아래로 뛰어내린다. 고개를 들며 “냐아아앙!” 하고 앙탈을 좀 부리긴 하지만. 더 어릴 때 입양해온 제이는 (정말 못 참을 때가 아니면) 아예 시도 자체를 하지 않는 편이다.

 

 

반면 가정집에서의 생활이 어쩌면 처음일지도 모르는 달이는 그야말로 무법묘다. 달이는 밥 줄 때가 되면 서슴없이 싱크대 위로 뛰어 올라온다. 남편이 옷장 문을 열면 어디선가 바람처럼 달려와 당연하다는 듯이 그 안으로 들어간다.

 

남편과 야식을 먹고 있으면 내 무릎을 짚고 올라와 얼굴부터 들이민다. 이불 속에서 꼼지락거리는 것이 사냥감이 아니라 사람의 손이나 발이라는 생각은 아예 못 하는 눈치다. 그게 어이없고도 웃겨서 우리 부부는 요즘 언제 사고를 칠지 모르는 달이에게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가끔 아리를 보고 ‘말 참 안 듣는 고양이’라고 혀를 찼다. 아리는 사람 말을 다 알아들으면서 고집을 부리는 듯한 태도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도 지지 않고 ‘안 된다’고 집요하게 말하면 결국 포기하면서도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로 애옹애옹 불평을 늘어놓는다.

 

고양이들 쪽에서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반려묘와 살아가다 보면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말이 들리는 것 같은 생활을 하게 된다. 고양이는 고양이답게 살게 두자는 것이 최우선 원칙이지만 함께 살아가다 보면 알게 모르게 서로의 습관이나 의사를 맞춰가게 되는 느낌이 생기는 것 같다.

 

하지만 아리가 말 안 듣는 고양이라면, 달이는 아직까지 말이 안 통하는 고양이다. 우직하게 마이웨이를 가는 이 순진하고 귀엽게 생긴 고양이를 어찌해야 하지? 덕분에 나는 마치 아직 ‘엄마’도 말하지 못하는 첫 아이를 기르는 초보 엄마의 마음이 되어 초심을 다지고 있다. 낫 놓고 기역부터 가르치는 마음으로 우선 가스렌지가 위험하다는 것만은 꼭 알려주어야 할 것 같다.

 

아직 늑대소년 같은 달이와도 마음으로 대화하는 날이 언젠가 오겠지. 느긋하게 그날을 만들어가는 과정도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이들만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일 것이다.

 

박은지 칼럼니스트(sogon_abou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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