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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지의 묘생묘사] 고양이에게 부탁하니 들어주었다

제이

 

[노트펫] 요시모토 바나나의 신간 ‘매일이, 여행’을 선물 받아서, 오랜만에 그녀의 에세이를 읽어 보았다. 한때 일본 소설이 무척 인기를 얻으며 또래 친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요시모토 바나나의 책을 읽었는데, 요즘은 그 열기가 조금 사그라진 느낌이다. 그래도 오랜만에 읽는 섬세한 묘사와 편안한 감성의 전달이 반가웠다.

 

요시모토 바나나는 ‘러브’라는 개를 키우고 있다고 에세이에서 몇 번 언급한 바 있었는데, 러브가 나이가 많아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있어 마음이 아팠다. 그 뒤로 어린 강아지를 데려왔지만 백내장 없는 새까만 눈과 아직 서로에 대해 잘 모르는 해맑음이 귀여운 것보다는 오히려 낯설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 강아지와의 관계도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익어간다.

 

더불어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녀가 식물이나 동물에게 종종 말을 건다는 것이다. 파키라는 식물을 키우면서 ‘쑥쑥 자라서 침대 위에 그늘을 만들어 줘’라고 했더니 정말 무성하게 잎을 뻗어 아침마다 그늘이 되어주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집에 어린 고양이가 왔는데 원래 있던 고양이가 그 아이를 하도 괴롭히기에, ‘이 아이는 갈 데가 없어. 여섯 달 동안이나 우리 안에 있다가 온 거야. 그러니까 괴롭히지 말고, 이 집에서 적응하는 동안 친절하게 대해 줘’라고 부탁했더니 정말로 괴롭힘을 멈추었다는 것이다.

 

식물이나 고양이가 정말 말을 알아듣고 그렇게 한 걸까? 사람들이 들으면 쉽게 믿지 못할 만한 이야기지만, 정말이라고 그녀는 덧붙였다.

 

나는 왠지 정말 그랬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물들도 간단한 말은 알아듣지만 긴 이야기나 어떤 ‘설명’을 알아듣는지 어떤지는 모른다. 하지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그런 순간이 있다.

 

애니멀 커뮤니케이션이 사기인지 어떤지 의견이 분분하지만, 기본적으로 애니멀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능력은 모든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잠재되어 있는 것이라고 한다. 오랫동안 반려동물을 키우면 몇 가지 소리나 몸짓, 눈빛만 보고도 무슨 말인지 알 수 있다.

 

“간식 달라고?”, “이 문 열어줘?” 하는 식으로 그들의 요구를 알아챌 수 있게 되는 것이 애니멀 커뮤니케이션의 가장 기본 원리라는 것이다. 거기에 얹어지는 추가적인 능력이나 요령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어쩐지 그런 설명을 들으니 고개를 끄덕여지는 구석이 있었다.

 

나도 뭔가 새로운 일이 생길 때마다 제이에게 말로 설명을 해주곤 했다. 둘째 아리를 입양할 때, 탁묘를 맡기고 여행을 갈 때도 그랬다.

 

“내일은 고양이 친구가 집에 올 거야. 너보다 나이는 많은데, 앞으로 같이 살 거니까 잘 지내줘. 이제 가족이니까, 알았지?”

“언니 일주일 동안 여행 다녀오는데, 언니네 엄마 집에서 지낼 수 있어? 언니가 일곱 밤만 자면 금방 올 테니까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

 

처음부터 이렇게 구체적인 이야기를 했던 것은 아닌데, 아마 제이가 아팠을 때 생긴 습관이었던 것 같다. 긴 항암치료를 하는 동안에 병원에서 제이에게 주사를 놓거나 약을 먹이고, 가끔은 입원을 시켜야 했다.

 

제이

 

제이 입장에서는 자기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의사 선생님이 널 괴롭히는 게 아니라 아프지 않게 해주려는 것이라는 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저 몇 번씩 제이가 알아주길 바라며 속삭일 수밖에 없었다.

 

“제이야, 괜찮아. 이것만 하고 집에 가자.”

 

“제이야, 언니가 두고 가는 거 아니야. 입원하고 내일 데리러 올게. 내일 빨리 올게.”

 

내용은 알아듣지 못해도 내 목소리를 들으면 그래도 제이는 조금 더 그 순간을 참아주었다. 그냥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더 자주 말을 걸고, 치료가 끝난 후에도 제이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는 순간에는 꼭 그에 대해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지금 제이가 건강을 유지하고 있는 게 어쩌면 그 교감의 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네가 더 오래 내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지금 옆에 있는 시간이 고맙고, 내가 정말 사랑한다는 말을 제이가 듣고 함께 싸워주고 있는 것 같다.

 

가끔은 똑같은 한국어를 하는 사람과 더 말이 안 통해 답답할 때가 있다. 어쩌면 중요한 건 말이 아닌지도 모른다. 전하고 싶은 마음, 그리고 듣고 싶은 마음, 그것이 우리 사이를 통하게 만들어주는 것일지도.

 

박은지 칼럼니스트(sogon_abou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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