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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 속 냥이와 멍이] 명예회복을 위한 고양이의 험난한 여정

런던의 대영박물관과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는 모두 이집트유적 전시실이 있습니다. 이 곳에는 고양이 여신 바스테트 상이 곳곳에 보관돼 있습니다.

 

로마 카피톨리노 박물관에도 이집트 고양이 여신과 같은 로마와 그리스의 바스테트 여신상(고양이신 바스테트,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가 되다 참조)이 잘 모셔져 있죠.

 

그러다 중세로 들어서면 고양이가 어디론지 사라집니다. 중세에 접어들면서 악마, 사탄, 마녀와 같은 취급을 받기(박해받는 고양이 참조) 때문입니다.

 

고양이는 악마라는 편견을 벗기고 삶속의 동반자로 들어오게 하는데 큰 기여를 한 화가들이 있습니다.

 

르네상스 화가들입니다. 사람중심의 세계관과, 과학적 세계관을 가진 이들이었기에 사람 뿐 아니라 고양이도 종교가 씌운 멍에를 벗게 해 줍니다.

 

작가 : 얀 반 에이크

제목 : 세례자 요한의 탄생

연도 : 1420년 경

방식 : 양피지에 채색

크기 : 28 x 19cm

출처 : Museo Civico d'Arte Antica di Torino (이탈리아 마다마 궁전)

 

 

북유럽 세밀화의 대표인 얀 반 에이크의 ‘세례자 요한의 탄생’입니다. 그림 아래편에 뼈와 음식을 먹고 있는 고양이와 멍이 보이시죠.

 

이 때만 해도 고양이는 최후의 만찬을 그릴 때, 예수님을 배신한 유다 옆에 배치해 그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배신의 아이콘’으로 그려진 거죠.

 

 

 

이 그림 속의 장면은 아주 신성한 곳입니다. 고양이가 배신의 아이콘에서 신성한 곳의 동반자로 신분이 격상된 겁니다.

 

좌측 위쪽에 산파로부터 엘리자베스가 아들인 세례자 요한을 건네받고 있습니다. 아이의 머리에 반짝이는 후광이 비추는 게 신성한 인물이라는 뜻이죠.

 

오른쪽의 파란색 옷을 입은 임산부가 성모마리아입니다. 당연히 예수님을 잉태하고 있죠.

 

세례자 요한은 기독교에서 비교 불가능한 선지자입니다. 태중에서 예수를 느낌으로 알아보고 기뻐서춤을 췄고, 나중에도 평범한 군중 속에서 예수가 메시아임을 인지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 성모 마리아가 함께 있는 장소에 고양이도 함께 있습니다.

 

방 저편에 멀찍이 앉아서 아이를 기다리는 노인이 제사장 사가랴입니다.

 

하나님이 대천사 가브리엘을 보내 아이를 갖게 되니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고 알려줬습니다.

 

노인이었던 그는 아이를 가지게 된다는 사실을 의심했다는(내 나이에 어떻게?) 이유로, 아이가 나올 때까지 말을 못하는 벌을 받고 있는 상태입니다.

 

지체 높은 제사장도 들어가지 못하는 방안에 떡 버티고 서서 음식을 먹도록 해 준 얀 반 에이크에게 고양이는 진짜 고마워해야 합니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고양이에 대한 편견과 악행은 지속적으로 진행됩니다.

 

이 그림은 책 크기(28x19cm)입니다. 그 아래 작게 그려진 고양이의 눈동자와 털 콧수염을 보면 눈앞에 있는 고양이를 보는 듯합니다.

 

주전자등 각종 주방용품과 창가의 커튼, 옷의 주름, 침대 아래 수납장의 물품 등을 한번 꼼꼼히 살펴보세요. 끈기와 집중력을 잃지 않는 관찰과 세밀한 묘사를 통해, 사물을 그대로 재현하려한 북유럽의 화풍을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작가 :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 레오나르도 다빈치

제목 : 그리스도의 세례

연도 : 1472~1475년

방식 : 나무에 유화

크기 : 151 × 177 cm

출처 :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오른쪽이 세례자 요한이고 세례를 받는 사람이 예수님입니다. 예수님과 왼편 천사쪽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세례자 요한과 오른편은 다빈치의 스승인 베로키오가 그렸답니다.

 

베로키오는 이 그림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는 군요. 자신의 실력이 제자에게 미치지 못한다는 이유에서죠.

 

예수님과 세례자 요한의 손과 발을 찬찬히 살펴보세요. 제가 보기에는 예수님그림이 훨씬 자연스럽습니다. 왼쪽은 원근법에 따른 소실점이 뚜렷한데 오른쪽은 그렇지 않은 듯 느껴지기도 하네요.

 

세례자 요한은 이스라엘의 지도층을 비판하고 메시아가 등장해 최후의 심판을 내릴 것을 예언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잘 모를 땝니다.

 

세례자 요한은 세례를 받으러 온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알아봅니다. 자신이 예수로부터 세례를 받아야 할 입장이라고 말했지만, 예수의 요구에 따라 예수에게 세례를 행합니다.

 

예수가 죄지은 사람들과 하나가 되고 이를 통해 하나님과 성령과 하나가 되는 기독교의 교리(삼위일체)가 구현됩니다.

 

그림 위쪽에 하늘이 열리고 비둘기가 내려옵니다.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의 관계가 그려진 그림은 무척 많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항상 십자가를 들고 있거나 세례에 쓰는 접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를 참고하면 다른 그림을 이해하는데도 도움이 됩니다.

 

예수님은 세례자 요한이 기대했던 심판하고 벌을 내리는 메시아가 아니었습니다. 본인은 고난을 당하면서 용서하고 사랑하고 죄를 사해주는 구원의 길을 갑니다.

 

악마로 지탄받던 고양이가 이러한 관계의 시작을 두 분과 함께 하도록 했습니다.

 

고양이가 얀 반 에이크에게 감사하는 게 도리이겠죠? 고양이가 안하면 집사님들이 대신하도록 하겠습니다.

 

작가 : 레오나르도 다빈치

제목 : 고양이, 사자 그리고 용

연도 : 1513~18년경

방식 : 소묘

크기 : 27 x 21cm

출처 : 윈저성 로얄 콜렉션 트러스트 / 엘리자베스 2세

 

레오나르도 다빈치에게 미술은 과학입니다. 다빈치는 동물의 움직임을 면밀히 살피고 근육을 일일이 해부해 그 움직임을 그대로 재현하고자 했습니다.

 

이를 통해 3차원 공간을 2차원 평면에 그대로 옮기고 또 기계를 만들어 움직이도록 했습니다.

 

많은 스케치를 남겼습니다. 제목이 < 고양이, 사자 그리고 용 >인데 고양이를 가장 크게 그렸습니다. 그의 호기심과 관심은 끝이 없었지만 특히 고양이를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앉아서 뭔가를 바라보는 고양이, (눈이 보이지 않는 뒷모습을 그렸지만) 뭔가를 응시하며 막 뛰어나가려는 순간의 고양이, 한가롭게 몸치장을 하는 고양이, 서로 뒤엉켜 장난을 하는 고양이.

 

고양이의 온갖 모습을 그렸습니다. 이 스케치는 치밀한 관찰을 통해 고양이의 여유, 민첩함, 아름다움, 우아함, 이중성 등 다양한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고양이에 대한 관찰과 과학적 인식을 기본으로 하는 이 같은 자세가 고양이에게 덧씌워진 주홍글씨를 희석시키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수백 년간 사람들의 머릿속에 문화로 각인된 인식은 그러나 쉽게 해소되지는 않습니다. 다음에는 고양이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르네상스시대의 그림을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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